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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치더락SS] 나만의 사랑을 너에게

카와즈 2024. 10. 3. 23:08

사랑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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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토 히토리에게 있어서 키타 이쿠요란 밤하늘의 별이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누구든 무심코 바라보게 만드는.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는 별.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를 동경했다. 하지만 동경은 동경일 뿐이고, 자신에게 그런 존재가 될만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조금만 더 그녀처럼 밝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 옆에 있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 옆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녀와 자신을 비교해 고토 히토리란 구제할 수 없는 아싸임을 자각하고 만다.
 붙임성 좋은 이쿠요는 가끔 거리감이 이상하다. 아침 인사로 허그를 하질 않나, 갑자기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기도 하고, 당황하는 사이에 투샷이 찍혀 있을 때도 있었다. 아마도 그건 히토리가 모르는 또래 커뮤니티란 곳에서는 용인되는 행동인 것이리라. 그러니까 거리감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순전히 자기 탓이고 이쿠요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오히려 그쪽이 보통인 거다, 히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씩 이쿠요가 거리를 좁혀 올 때 심장이 옥죄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자기가 아싸인 탓이라고.

 “히토리 짱, 연습 가자!”

 오늘도 이쿠요는 반짝이는 눈으로 히토리의 손을 잡아끈다. 
 기쁘지만 괴롭다. 그녀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게. 그녀 옆에 진정으로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게.
 히토리는 스스로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데에 약간의 신기함을 느꼈다.


***


 “하~ 아까 연주 진짜 좋지 않았어!?”
 “응. 신곡 역대급이었어.”
 “히토리 짱이랑 연습한 보람이 있었어요!”
 “아, 네.”

 연습이 끝나고 귀가 전에 잠시 갖는 휴식 시간. 오늘은 STARRY에 공연이 없어서 멤버들은 테이블을 맘대로 점령하고 있었다.
 이지치 니지카는 감촉을 확인하듯이 손을 까딱거리면서 발을 굴렀다. 연습으로 상당히 체력을 소모했을 텐데도 기운이 넘쳐 보인다. 원래 체력이 없는 히토리와 무거운 베이스를 연주하는 야마다 료는 등을 펴고 앉아 있는 게 고작인 듯했다.
 기운이 넘친다고 하면 이쿠요도 그랬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까지 불렀는데도, 그녀는 연습 전후로 달라진 기색이 없었다. 

 “오늘 부르면서도 생각했는데, 신곡 가사 대박이지 않아요? 히토리 짱 대단해!”
 “에, 아, 에헤헤… 그, 그 정도까진…….”
 “뭔가 약간 러브송 느낌이지.”
 “으헤헤…헤…에?”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표정이 러브송이란 단어에 굳어진다. 러브송? 러브송이라니?

 “오치사비가 진짜 최고예요. 료 선배 편곡이랑 합쳐져서 완전! 대박!”

(*오치사비: 간주 후에 반주가 잔잔해지면서 나오는 후렴)
 “그런 가사였으니까. 힘 좀 썼지. 엣헴.”

 “잠깐, 잠깐만요, 그 노래는 딱히 러브송이…….”
 “어? 아니야?”

 기어들어가는 히토리의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멈춘다. 그렇게 쳐다보면 말을 잇기가 고통스러웠지만 그 노래가 러브송 취급을 받았다간 앞으로가 더 고통스러워질 게 뻔했다. 히토리는 어떻게든 말을 짜냈다.

 “어디까지나 그냥, 우정을 테마로 했달까, 키, 키타 짱을 테마로 했달까. 키타 짱은 소중한 친구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고 싶단 마음을 담아서, 그, 저기……. 앗 죄송해요, 역시 저 같은 게 그런 생각 하는 건…….”
 “에에에!? 그 가사 날 소재로 쓴 거였어?!”
 “봇치, 그 가사를 우정이라고 하는 건…….”
 “아, 아하하, 봇치 짱 우정은 좀 무거운걸~”
 “그, 그렇게 이상한가요…?”

 히토리는 결속밴드를 만날 때까지 친구라곤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우정이 무겁단 말을 들어도 잘 와닿지 않는다. 우정에 가볍고 무겁고가 있나? 겨우 생긴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입을 다무는 히토리를 보고 이쿠요가 말한다.

 “난 엄청 기뻐! 히토리 짱이 날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 주다니!”

 이쿠요는 거리를 좁혀 히토리의 두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잡는다. 빈말이 아니란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눈부신 미소에 히토리의 시선이 못박힌다.
 빨려들 것 같았다. 동경하는 소중한 친구가 자신에게 기쁘다고 말해 준다. 자신의 행동이 기뻤다고 말해 준다. 그것만으로 가슴이 행복으로 벅차올랐다. 바로 이런 부분을 무겁다고 하는 걸 거라고 히토리는 생각했다.
 오오, 하고 료가 밋밋한 감탄을 내뱉었다. 니지카는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조금 놀리듯이 중얼거렸다.

 “오늘도 둘 다 러브러브구만~”
 “러, 러브?!”
 “이지치 선배도 참!”
 “역시 그거 러브송 맞잖아. 이쿠요를 향한 러브송.”
 “료 선배까지!”
 “아, 아, 아…….”

 러브적인 놀림을 견디지 못한 히토리는 이윽고 폭발사산하고 말았다. 선배들 때문이에요! 이쿠요는 두 선배에게 투덜거리면서 히토리의 조각을 모았다. 니지카는 미안해했지만 료는 반대로 뾰로통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는 듯이.

 “애초에 히토리 짱이 절 그런 눈으로 볼 리가 없잖아요. 저희 둘 다 여잔데요?”

 모은 조각을 맞추는 니지카와 이쿠요를 료는 혼자 의자에 앉아 바라보았다. 순진한 후배는 3년이 지나도 록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여자를 끼고 노는 건 밴드맨의 기본 소양이라니까. 그런 료의 마음을 대변하듯이 니지카가 이쿠요를 타이른다.

 “키타 짱~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은 하면 못 써.”
 “네? …앗, 죄, 죄송해요.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만…….”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어디든 있을걸? 자, 다 됐다.”
 “아, 감사합니다.”

 부활한 히토리는 아직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으려니 어쩐 일인지 료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쿠요는 여자애랑 사귀는 상상 해 본 적 없어? 일단 귀엽고 남자보다 말은 더 잘 통할 것 같잖아.”
 “음, 글쎄요. 해 본 적은 없는데…….”

 사귀는 상상이라니.
 일단 동성이랑 사귄다는 발상 자체가 이쿠요에겐 없었다. 그야 고등학교에서도 동성 친구에게 사랑한다느니 말하는 친구는 있었지만, 그건 서로가 장난이란 걸 알고 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연애 얘기가 나오면 당연히 남자애 얘기였고,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매체에 나오는 것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당연히 커플은 남자와 여자. 이쿠요의 세상에서 연애란 어디까지나 남녀간의 이벤트였다.

 “역시 뭔가, 상상이 잘 안 가요. 저는 아마 그런 취향은 아닌가 봐요.”
 “흐응. 상대가 봇치여도? 봇치 얼굴 좋잖아.”
 “히토리 짱은 오히려 가족 같다고 할까……. 가족하고 사귀지는 않잖아요?”

 뭐 그건 그런가, 하고 료는 곧 이 얘기는 끝이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이스 가방을 짊어지는 그녀를 보고 모두가 시계를 본다. 슬슬 니지카가 저녁을 준비하러 갈 시간이다. 모두가 각자 짐을 챙기고 가게를 점검한다. 불을 다 끄고 빠진 게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넷은 스타리를 나섰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집으로……가지는 않았다.

 “뭐야, 료, 오늘도 우리집에서 밥 먹고 가게?”
 “니지카 밥이 좋아.”

 한숨을 쉬면서 니지카는 친구를 데리고 계단을 오른다. 그런 두 사람과 헤어져, 히토리와 이쿠요는 걷기 시작했다.
 히토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취를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나가와에서 시모키타자와를 왕복하면서 음악 활동을 하기엔 부담이 큰 탓이었다. 기왕 자취를 한다면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게 가까운 곳이 낫다고 생각해서 시모키타자와에 방을 구했다. 사는 데에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 히토리의 집은 조용한 골목에 있는, 적당히 작고 적당히 어두운 방이었다.

 “히토리 짱, 아깐 미안. 내가 괜한 소릴 해서 선배한테 놀림받고.”
 “아, 아뇨, 제가 그런 얘기 내성이 없는 게 잘못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이 근처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이쿠요는 자주 히토리네 집에서 외박을 하곤 했다. 대학생이 되고 밴드 활동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부모님의 간섭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도 둘이 같은 귀갓길을 걷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도 키타 짱 자고 가겠지. 여기까지 같이 왔으니까. 히토리는 멍하니 생각한다.
 이쿠요가 자주 놀러 오는 건 기쁘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 히토리는 그녀처럼 능숙하게 마음을 전할 줄도 몰랐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언젠가 정나미가 떨어져 버림받지 않을까 불안했다.
 그 가사는 그런 마음의 발로였다. 히토리가 히토리 나름대로 전하고 싶은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가사. 러브송이라고 오해받긴 했지만, 선배들은 무겁다고도 했지만 어쨌든 이쿠요는 기쁘다고 말해 줬다. 두 손을 꼭 잡고. 헤헤.

 “키타 짱, 저……. 키타 짱이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건, 그, 진짜니까요.”
 “응. 나도!”

 이쿠요는 눈부시게 웃으면서 히토리의 손을 잡았다. 어두운 거리에선 히토리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모습은 이쿠요에게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트에서 적당한 저녁거리를 사서, 시모키타자와의 한적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


 키타 이쿠요에게 있어서 고토 히토리란 밤하늘의 별이었다. 밝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어두울 땐 누구보다 빛나는. 누구도 눈을 뗄 수 없는. 하지만 붙잡을 수는 없는 별.
 모두를 매료시키는 재능을 가진 그녀를 동경했다. 뭐든지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 이쿠요는, 하지만 특출나게 잘하는 건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말하자면 평범했다.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적어도 가까이서 그 반짝임을 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옆에 있기에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에 가까워졌을까. 옆에서 곤히 자는 히토리를 보면서 이쿠요는 생각한다.
 기타도 노래도 열심히 해 왔다. 하지만 빈 시간을 전부 연습에 보태더라도 히토리의 연주에는 미치지 못한다. 연습량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바로 재능이란 거라고, 이쿠요는 밴드 활동을 계속하면 할수록 깨닫는다.
 딱히 그게 싫다는 건 아니다. 동경의 대상은 역시 계속 동경의 대상으로 있어 줬으면 한다. 단지 언젠가 한계가 오는 게 아닐까 두렵다. 범재인 자신이 더는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밴드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두렵다. 그리고——.

 “우음…….”

 잠에 빠진 히토리가 뒤척이며 신음을 흘린다. 이쿠요는 팔을 뻗어 히토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자신과는 달리 근육이 없고 말랑말랑한 감촉은 몇 번 만져 봐도 신기하다. 따스한 밀착감과 함께 가슴에 안심감이 차오른다.
 역시 계속 옆에 있고 싶다. 언제까지고.
 이쿠요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한 것. 자신이 능력 부족으로 밴드의 발목을 잡게 되면, 밴드 활동에 지장이 가지 않을까. 그러면 멤버들끼리도 소원해지지 않을까. 그러다 결국.
 히토리 짱하고도 사이가 나빠지는 게 아닐까.
 결국은 그런 거였다. 니지카는 히토리의 가사를 보고 ‘우정치고는 너무 무겁다’고 했지만, 무거운 건 이쿠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테마로 그런, 러브송으로 착각할만한 가사를 써 줬다는 게 정말로 기뻤다. 러브러브하다고 놀림은 받았지만 그런 건 상관 없을만큼 기뻤다.
 히토리 옆에 계속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도 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보통 그냥 친구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친구를 넘어선 거라고, 친구를 넘어서 가족인 거라고 이쿠요는 결론지었다.
 히토리가 다시 몸을 뒤척인다. 쿠션이나 그런 거라고 생각한 건지 이쿠요의 등에도 팔이 둘러진다. 사랑해 마지않는 히토리의 냄새에 감싸여, 이쿠요는 순식간에 의식을 놓았다.


***


 다음날, 히토리는 집에 혼자 남아 아침에 있었던 일을 곱씹고 있었다. 아침부터 도게자를 박아서 대학에 가야 하는 이쿠요를 곤란하게 만든 일이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일.
 팔이 불편해서 일찍 잠이 깼다. 무슨 일인가 눈을 뜬 순간 붉은 머리칼이 시야 한가득 들어왔다. 한쪽 팔은 그 아래 묻혀 있었고, 다른쪽 팔은 그 위에 덮여 있었다. 어쩐지 이불과는 다른 보드라운 감촉이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눈을 꿈뻑이며 숨을 들이키자 자신의 것이 아닌 냄새가 가슴을 가득 채운다. 뭔가 잘 모르겠는데 좋은 냄새……. 하고 코를 부비자 이쿠요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잠에 빠진 얼굴은 힘이 풀려 있어서인지 앳된 이목구비가 평소보다 귀엽게 보였다.
 잠이 덜 깬 히토리는 왠지 모르게, 그 얼굴에 키스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키타 짱이 있으니까 그러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몽롱한 머리는 그걸 실행에 옮겼다. 히토리의 입술이 이쿠요의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좀처럼 들을 일이 없는 자그마한 쪽 소리에 행복을 느끼기도 잠시. 히토리의 의식이 한 순간에 각성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우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이불을 뛰쳐나온 히토리는 곧바로 넙죽 엎드려 고개를 바닥에 박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쿠요는 열심히 히토리를 달랬다.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응?!”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히토리는 그게 아니라고, 키타 짱 이마에 키스를 한 걸 사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한숨을 쉬면서 아직 개지 않은 이불에 혼자 앉아, 이쿠요가 놓고 간 기타를 바라본다. 어떻게 된 게 분명하다. 아무리 친구가 좋기로서니 키스를 해 버리는 건 정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가족처럼 여기고 있다고 어제 막 들은 참이었다. 그런 사람한테 나는 무슨 짓을!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흘리면서 히토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의 감정에 머리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키타 짱은 늘 동경해 왔고 늘 소중히 여겨 왔다. 같이 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어제 무슨 일 있었던가. 어제, 어제는 연습이 있었고, 선배들이랑 가사 얘기를 하다 터져 버렸고, 그리고 키타 짱이 우리 집에 와서.

 ‘키타 짱이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건, 그, 진짜니까요.’
 ‘응. 나도!’

 돌아오는 길에 봤던 눈부신 미소가 되살아났다. 자기도 그렇다고 말해 준 게 참을 수 없이 기뻤다. 키타 짱도 나를 소중히 생각해 준다는 게 전해져 와서. 그래. 그래서 어쩐지 감정이 북받쳐서. 키타 짱하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래서……
 아침의 광경이 다시 떠올라 반사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정말 나는 어떻게 돼 버린 걸까. 이래선, 이래선 마치 정말로, 키타 짱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
 아니 그야 좋아하긴 하지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히토리가 혼자 백면상을 하면서 바닥을 구르고 있자,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깜짝 놀라 그쪽을 보자 자동으로 켜진 화면에는 료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올랐다. 곡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겠다는, 용건만 적힌 짧은 메시지. 료가 음악 관련해서 히토리의 집에 오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히토리는 별 의문 없이 알겠다는 답장을 했다.
 료가 집에 온다면 이러고 있을 순 없다. 히토리는 생각을 멈추고 일단 방을 치우기로 했다. 이불을 개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청소하고, 어제 먹은 저녁 쓰레기를 대충 정리했다. 원체 물건이 적은 히토리의 방은 그 이상 정돈할 곳도 없었다.
 정리가 일단락되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료를 집에 들이면서 빨리도 왔네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어제 료가 니지카네 집에서 저녁을 먹었던 게 떠올랐다. 그대로 거기서 자고 온 걸까.

 “이쿠요는 학교 갔어?” 하며 그녀는 방에 들어와 적당히 짐을 내려놓고 앉았다. 긍정하면서 히토리가 보리차 두 잔을 가져와 내려놓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본론이 날아왔다.
 “그래서, 할 얘기 말인데.”
 “아, 네.”
 “봇치, 이쿠요 좋아해?”
 “헤?”
 “좋아하지?”

 팔짱을 끼고 똑바로 히토리를 바라보는 료. 도저히 농담을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히토리는 좋아한다는 단어에서 곧장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좋, 조조조좋아, 하는 거, 아니,”
 “괜찮아, 본인한텐 말 안 할 거니까. 뭐, 니지카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아, 아니, 그, 정말로. 그, 저기…….”

 대체 왜 이런 얘기가 된 걸까. 료 씨는 음악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었던 건가? 그보다, 내가 키타 짱을 좋아한다니? 니지카 짱이 이미 알고 있다니??
 히토리는 스스로도 이쿠요에게 품은 감정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우정이라기엔 무겁다는 것 같다. 동경이라기엔 거리가 너무 가깝다. 가족애라기엔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만약 이게 정말로, 정말로 키타 짱을 좋아하는 거라면. 료 씨에게 물어보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쨌든 료 씨는 인생 선배니까.
 히토리는 한참 입을 뻐끔뻐끔 하다가, 결심하고 말했다.

 “모, 모르겠어요. 키타 짱을 좋아하는 건지.”
 “흐음. 모르겠단 말이지.”
 “료, 료 씨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어제 봇치의 눈빛이 완전 그거였으니까.”

 히토리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료는 딱히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반응을 보고 료는 덧붙인다.

 “가사도 그렇고. 이쿠요한테 기타 가르쳐 줄 때도 그렇고. 라이브 중에도 맨날 이쿠요 보고 있고.”
 “자, 잠깐만요. 제가 맨날 키타 짱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고요?”
 “그렇다니까.”

 빨갛게 달아오르는 후배를 보고 료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정말 봇치는 순진해서 귀엽다니까.

 “반대로 봇치는 뭘 모르겠는 거야? 옆에서 보면 좋아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 그, 저…….”

 히토리는 망설이다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로 했다. 일어나 보니 키타 짱과 서로 끌어안고 있었던 것.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키스해 버린 것.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단 것. 스스로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단 것.

 “료 씨는, 좋아한단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사람을 내 걸로 만들고 싶다는 감정.”

 료는 즉답했다. 그 답은 히토리에겐 좀 어그레시브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이쿠요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을까? 옆에 있어도 되는 건지를 먼저 고민하고 마는 내가?
 고민하는 히토리에게 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 생각해. 내 경우엔 그랬다는 얘기. 아마…….”

 뭐, 봇치한테라면 괜찮으려나. 그렇게 운을 떼고, 말은 이어진다.

 “나랑 니지카 사귀고 있거든. 아마 니지카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니…?! 사귀…?!!?”
 “응. 꽤 전부터.”

 히토리의 머릿속에 선배들의 사이좋은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정말로 그냥 사이좋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전혀 몰랐다. 니지카가 지나치게 료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니지카는 원래 친절한 성격이니까 절친한 친구 상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설마 커플의 모습이었다니…….

 “앗, 봇치, 녹지 마. 나 혼자선 귀찮단 말이야.”
 “앗 넵.”
 “아무튼.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역시 좋아하는 거 아냐? 나나 니지카가 상대였어도 그럴 수 있어?”
 “그, 그건…….”

 눈을 떠 보니 품 안에 니지카 짱이나 료 씨가 있었다면? 오늘 아침처럼 행복에 취해서 뭔가를 저질렀을까? 니지카 짱도 료 씨도 좋아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선배로서 동경하지만. 아마도…….

 “모,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치?”

 그런가. 나는 키타 짱을 좋아하는 건가.
 사랑. 그 울림은 어쩐지 낯간지러우면서도 딱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게다가 그 대상이 키타 짱이라니. 하지만 이쿠요의 미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에 행복감이 차오르는 걸 보면, 과연 사랑이라는 말은 잘 어울렸다.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인 히토리를 료는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 진지해 보여서 히토리는 곧 자세를 바로했다.

 “그래서, 여기부터가 본론인데. 봇치는 어떻게 하고 싶어?”
 “어떻게?”
 “어제 들었잖아. 이쿠요는 봇치랑 연애할 생각 없다는 거.”
 “아…….”

 그러고 보면 그랬었다. 여자랑 사귀는 상상은 해 본 적 없다고. 히토리는 가족 같은 거니까 히토리가 상대라도 사귀지는 않을 거라고. 그 말은 즉, 히토리가 아무리 연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연인 관계가 되는 일은 없을 거란 뜻이다.
 하지만 여자와 사귀는 상상을 해 본 적 없는 건 히토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에, 누군가와 사귀는 상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인기쟁이가 되어 모두의 성원을 받는 상상은 간단했다. 하지만 연애에 관한 상상은 컴플렉스를 자극해서 별로 재밌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고독사할 게 뻔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제 와서 누군가에게 반했다고 해도 갑자기 현실감이 느껴질 리가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어떡하고 싶은지. 뭔가, 실감이 잘 안 나요.”

 그것도 그런가. 료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생각해 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얘기 들어줄 테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묘하게 친절한걸, 하고 히토리는 생각했다. 이쿠요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굳이 집까지 찾아와서 이런 얘기를 하다니.
 아, 혹시 연애가 밴드 해산 원인 1위니까? 너 때문에 밴드가 해산했다간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잘 처신하라는 그런 뜻?
 미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히토리를 보고, 료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봇치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나는 그냥 봇치랑 이쿠요가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거 보기 싫어서 그래.”
 “네?”
 “연애는 좋은 거지만 한 발 삐끗하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너희 둘은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뭐 그런 소리야.”

 나도 너희가 소중하니까. 그런 말은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히토리만큼이나 료도 본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서투른 사람이었다. 이 화제에서 도망치려고 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쿠요의 기타를 가리켰다.

 “이쿠요 거 빌려도 되지? 기왕 왔으니까 다음 곡 아이디어라도 내 보자.”

 원래 료 씨 거지만. 아니, 가방은 키타 짱 거긴 한데. 어느 쪽이든 나한테 허락을 구해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히토리는 아, 네 라고 말했다. 히토리도 스탠드에 놓인 자신의 기타를 들어 스트랩을 어깨에 걸쳤다. 서로 튜닝을 하고 아무렇게나 프레이즈를 치기 시작한다. 선율 조각들이 합쳐지고 이어져 음악이 된다.
 고민은 무엇하나 해결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털어 놓아서일까. 아니면 음악 덕분일까. 히토리는 어쩐지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


 언제나와 같이 음악 활동에 매진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이쿠요를 향한 연심을 자각한 지 한 달, 히토리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다.
 처음 1주일 정도는 그저 행복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쿠요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행복으로 터질 것 같았다. 사랑이란 이렇게나 좋은 거구나,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사랑에 목숨을 거는구나, 히토리는 매일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1주일 사이에 히토리는 무언가 이상하단 것을 깨달았다. 자신 안에서 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충동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이쿠요가 팔짱을 끼며 달라붙을 때, 입술을 훔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란히 앉아 기타 연습을 할 때, 기타 같은 건 됐으니까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단 것을 깨달은 건 이쿠요가 자고 갔을 때였다. 평소처럼 같은 이불에 누웠을 때, 히토리는 이쿠요를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을 깨달은 순간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녀를 자기 손으로 더럽힐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키타 짱은 그런 대상이 아니라고, 키타 짱을 상처입힐 뿐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 욕망은 절대로 사라져 주지 않았다. 그 날 밤 히토리는 자신의 팔을 끌어안고 벌벌 떨면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이후로 히토리는 이쿠요를 마주하는 게 무서워졌다. 자신은 시한폭탄이다. 이쿠요와 함께 있다간 틀림없이 무언가를 저지르고 말 것이다. 그런 불안이 태도에 드러나 이쿠요와의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이쿠요가 거리를 좁혀도 히토리가 도로 거리를 벌렸다. 조금 줄어든 느낌이 드는 이쿠요의 미소가,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하지만 밴드 활동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녀를 만나야 한다. 호흡을 맞추어 라이브를 해야 한다. 가끔은 같이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처럼 스튜디오 연습을 하는 날은 라이브보다도 아르바이트보다도 훨씬 많이 있었다.

 “앗, 죄,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 괜찮아. 다시 한 번 해 보자.”

 스튜디오에 모인 네 명. 평소와 같은 스튜디오 연습은 평소와 같이 흘러가지 못했다.
 드럼스틱이 울리고 다시 한 번 연주가 시작된다. 보컬의 프레이즈가 끝난다. 그리고 거기서 들어왔어야 하는 리드 기타가, 이번에도 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걸로 여섯 번째.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실수를, 여섯 번. 히토리는 기타 넥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가느다란 사죄의 목소리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에 섞였다.
 료와 니지카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쿠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히토리에게 다가갔다. 죽을상을 하고 있었던 그녀는 다가오는 이쿠요를 보고 더욱 절망적인 표정이 되었다. 발을 무겁게 만드는 그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이쿠요는 히토리 바로 앞까지 걸어 얼굴을 살폈다.

 “히토리 짱, 괜찮아? 몸이라도 안 좋아?”
 “아…아니…그…,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로? 너무 무리하지 마.”

 이쿠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히토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기껏 가까워진 거리가 도로 원래대로. 요즘 들어 자주 생기게 된 그 거리가 이쿠요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튜디오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다. 둘의 모습을 보고 료와 니지카는 서로 눈짓을 했다. 이건 안 되겠지? 응. 안 되겠어. 조용해진 방음실에 니지카의 손뼉 소리가 울렸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자. 억지로 계속해 봤자고, 내일도 연습 있으니까. 그럼 오늘은 해산!”

 토를 달 틈도 없는 해산 선언을 듣고 이쿠요도 마지못해 정리를 시작한다. 힐끗 보인 리드 기타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기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둥근 실루엣에 노란 머리칼이 겹쳐진다. 니지카가 마찬가지로 쪼그려 앉아 작은 소리로 히토리를 부르는 게 들렸다.

 “봇치 짱,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이 다음에 잠깐 남아 줄래?”
 “……네.”

 각자 악기를 정리하고 스튜디오의 문이 열린다. 이쿠요는 니지카 옆에 붙어 있는 히토리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지만, “여긴 니지카한테 맡기고 이쿠요는 이만 돌아가.”란 료의 말에 포기하고 밖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이지치 선배도 료 선배도, 내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거다. 히토리 짱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일 연습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거운 라이브하우스의 문을 밀면서 이쿠요가 다시 한 번 계단 아래를 돌아보았을 때. 테이블에 앉은 히토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에는 어쩐지 미안함이 깃든 것처럼 보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신호로 니지카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히토리를 보며 턱을 괸다.

 “봇치 짱, 키타 짱이랑 무슨 일 있었어? 요즘 계속 키타 짱이랑 서먹서먹하잖아.”
 “연습에 집중 못한 거, 이쿠요 때문이지? 합주도 점점 안 좋아지는 느낌이고. 봇치뿐만 아니라 이쿠요도.”
 “아, 으…….”

 잠시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를 흘리다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선배들을 보고 히토리는 포기하고 전부 털어놓기로 했다.

 “키타 짱이랑 같이 있으면 긴장돼서……. 더 다가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거리감을 잘 모르겠어서. 그게 키타 짱한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건 아는데요, 그래서 죄책감 때문에 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게 돼서…….”
 “예전이랑 똑같이는 무리였어?”
 “그게, 예전부터 키타 짱 거리감 엄청 가까웠잖아요. 그런 거리로 있으면 자꾸, 어…… 그 이상을 바라게 된달지…….”
 “아-.”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응.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고, 니지카와 료는 팔짱을 끼고 신음했다.
 아예 둘이 사귀어 버리면 좋을 텐데. 하지만 고백을 하면 차일 게 뻔하고, 그러고 나면 둘 사이는 더 소원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버려 둬도 상황은 아무것도 호전되지 않을 테고 밴드 활동에 지장이 가는 것도 마찬가지. 어차피 이건 당사자들의 문제다. 우리가 고민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다.
 연애는 밴드 해산 원인 1순위. 니지카는 오늘만큼 그 말이 무겁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키타 짱, 딱히 동성애가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는데.”
 “거부감이 없는 거랑 본인이 그런 거랑은 별개잖아.”
 “그치-.”

 니지카는 크게 한숨을 쉬고 테이블에 엎어져 버렸다. 슬쩍 료의 손이 뻗어와 니지카의 등에 닿더니, 손이 작게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니지카는 우웅 하는 소리를 낼 뿐 료를 말리지 않았다. 아마 둘만 있을 때는 늘 저런 거리감인 거겠지, 우리랑 있을 때는 의식하고 숨기고 있었던 걸까, 히토리는 생각했다. 자신의 짝사랑을 떠올리고 서글퍼져서 괜히 테이블에 놓여 있던 생수를 마신다.

 “봇치는 어떡하고 싶어?”
 “저는…….”

 지난번과 같은 질문. 저번에는 막 깨달은 감정에 머리가 쫓아가지 못해서 대답하지 못했었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키타 짱과의 관계를 어떡하고 싶은 걸까. 히토리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저 역시, 키타 짱한테 고백할래요. 사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적어도 솔직하게 말하고 요즘 키타 짱하고 어색했던 걸 사과하고 싶어요.”

 선배들은 팔짱을 끼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걸로 괜찮겠어? 키타 짱이랑 예전처럼은 못 지낼지도 모르는데.”
 “네.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예전처럼은 못 지낼 거라고 생각하고……. 결속밴드가 계속 활동할 수 있다면, 키타 짱이 결속밴드에서 노래해 준다면 전 그걸로 됐어요.”

 분명하게 말하는 히토리를 보고 니지카는 알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는 작전 회의가 이어졌다. 내일 있는 연습에 일부러 료와 니지카가 늦게 와서 히토리와 이쿠요 둘만의 시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히토리가 고백. 이후에 적당히 타이밍을 봐서 남은 둘이 합류하는 작전이다.

 “이쿠요도 딱히 봇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잘 얘기하면 이해는 해 주겠지.”
 “반대로 키타 짱이 어색해해서 밴드 분위기가 더 나빠지면……?”
 “그 때는 니지카가 나설 차례.”
 “야.”

 노려보는 니지카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료가 가방을 챙기는 걸 신호로 그 날은 해산했다.


***


 다음 날, 결전의 때. 일부러 연습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온 히토리는 스타리 홀에서 이쿠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로 얘기해 본 지 적어도 2주는 넘게 지났다. 어떤 말을 할지 미리 대본은 짜 왔지만 긴장으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머리가 나쁘니까 긴 대본을 술술 말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더해가는 긴장에 테이블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히토리는 텅 빈 홀을 종종걸음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홀을 다섯 바퀴 넘게 돌았을 즈음, 문이 열리고 “안녕하세요~”하는 이쿠요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토리는 그 자리에 서서 몸을 경직시키고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이쿠요와 눈이 마주쳤다.

 “아, 히토리 짱…….”

 그 얼굴에 곤란함이 떠오른다. 둘만 있는 상황을 거북해하고 있다는 건 뻔했다. 히토리는 긴장으로 바들바들 떨면서도, 이쿠요의 그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키, 키타 짱……!”
 “아, 응.”

 뭐라도 말해야 한다. 대본은 어떤 식이었더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랑 안 사귀어 주세요!”
 “응……?”

 저질렀다!
 이쿠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넋이 나간 듯이 히토리를 바라보았다. 히토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기묘한 소리를 내다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랜만에 들은 명료한 히토리의 목소리와 평소와 같은 기행에 이쿠요는 어쩐지 안심감을 느끼며 계단을 내려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쿠요가 다가와도 히토리는 도망가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 으, 아……. 그, 그게……. 키타 짱한테 사과를 하고 싶어서…….”
 “사과?”
 “아, 네. 요즘 계속 그, 키타 짱을 피해 다녔달지, 거리를 뒀달지, 그래서 키타 짱한테 미안해서…….”

 히토리가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건 물론 알고 있었다. 그렇게나 가까이 지냈으니까 더욱 갑자기 생긴 거리가 답답했다. 오늘은 그 이유를 말해 주려는 것일까? 이쿠요는 재촉하지 않고 히토리의 말을 기다렸다.

 “저, 사실은, 키, 키타 짱을……. 좋아해요.”
 “…….”
 “좋, 좋아한다고 해도 친구 사이의 그런 게 아니라. 러브적인 의미로, 예요. 죄송해요. 키타 짱한테 저는 그런 대상이 아니란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사귀어 달라고 할 생각은 없는데요. 그냥 그, 저, 키타 짱 거리감이 너무 가까워서, 제가 너무 다가갈까봐, 키타 짱한테 상처 줄까봐 무서워서……. 그래도 결속밴드는 소중하니까, 모두한테도 소중한 곳이니까,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 적당한 거리감을 찾을 수 있게, 키, 키타 짱도 도와 줬으면 하고…….”

 빠르게 쏟아내는 말에 이쿠요는 반응할 수 없었다.
 히토리 짱이 나를 좋아한다고? 연애적으로?
 하지만 사귈 생각은 없다고?
 무섭다니 뭐가?
 갑자기 쏟아진 정보를 처리하지 못하고 이쿠요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만 있었다. 그제서야 히토리는 자신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단 것을 깨달았다. 바닥을 보면서 죄송하단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둘 말곤 아무도 없는 라이브하우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가장 처음 든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히토리에게서 고백을, 그것도 더 가까워지고 싶단 게 아니라 다가오지 말라는 내용의 고백을 들을 거라곤 생각도 해 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보다도 주변 사정을 우선하는 그런 부분이 너무나 그녀다워서, 이쿠요는 자기 안의 히토리를 향한 애정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더 알고 싶었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었다.

 “거리가 가까우면 불편해?”
 “으, 불편하달지……. 키, 키타 짱이 가까이 있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폭발할 것 같달지…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더 가까이?”
 “애, 애인끼리 할 것 같은, 그런 걸 바라게 된달까…….”
 “애인의 스킨십? 키스 같은 거?”
 “으아으으…네…….”

 심문을 받는 히토리는 곧 귀 끝까지 새빨개지고 말았다.

 “이전이랑 같은 거리감으론 안 돼?”
 “아아아안 돼요 너무 가까워요!”
 “지금까진 괜찮았잖아. 허그도 하고 같이 자기도 했고.”
 “이이이제는 안 돼요, 제가 키타 짱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푸훕, 히토리 짱 몬스터나 뭐 그런 거였어?”

 키득키득 웃는 이쿠요는 히토리에게 한 발짝 다가가려다 발을 되돌렸다. 그녀는 이쿠요가 싫어진 게 아니었다. 이쿠요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쿠요를 위해 거리를 두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가. 지금도 히토리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자신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히토리가 말하는 자신의 감정은 이쿠요가 지금까지 접해 왔던 연애적인 사랑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같이 있으면 두근거리고, 그 이상을 바라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감정은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히토리는 좋아하지만, 분명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지만, 두근거린다거나 키스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히토리가 좋을 뿐이다.
 연애는 같은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하는 것. 이쿠요는 히토리에게 돌려줄 수 있는 같은 종류의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옆에 설 수는 없다. 그것을 이해하고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히토리 짱은 좋아하지만 연애 대상은 아니야, 미안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사실에 신기함을 느끼면서, 시간을 들여 자아낸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알았어. 대답은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 때까진 너무 가까이 안 가도록 할 테니까.”
 “에?”
 “일단 연습하러 가자!”

 대답은 기다려 달라니, 전혀 예상 밖의 말에 히토리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허둥지둥 이쿠요의 뒤를 쫓았다. 각자 기타를 꺼내고 세팅을 한다. 같은 기타니까 평소엔 히토리 바로 옆에 짐을 푸는 이쿠요가, 오늘은 방 반대편에서 연습 준비를 하고 있다. 그 표정은 스타리에 들어올 때와는 정반대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먼 거리에서 이쿠요를 바라보는 히토리는 가슴에 박힌 가시 하나가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쿠요는 웃는 얼굴이 어울린다.

 “선배들 오기 전까지 먼저 맞춰 볼래?”
 “아, 네.”

 어제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던 곡을 기타만 맞춰 본다. 최근에 계속 컨디션 나빠 보였던 히토리의 기타가 점점 원래의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그에 호응하듯이 이쿠요의 배킹에 애드립이 섞인다. 화음과 멜로디가 겹쳐지자 자연스럽게 노랫소리가 그 위에 올랐다. 저절로 신이 나서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곳에 더이상 거북함이나 긴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튜디오 앞에 도착한 니지카와 료는 새어나오는 기타 소리를 듣고 얼굴을 마주보았다. 문에 달린 유리창으로 안쪽을 엿보자 후배들은 어정쩡한 거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세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일이 잘 풀렸음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니지카는 즐거운 마음으로 스튜디오 문손잡이를 돌렸다.

 “늦어서 미안! 오늘 연습도 힘내자!”

 그 날 연습은 전날과는 정반대로, 특별한 실수도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


 “으음…….”

 이쿠요는 스타리의 카운터에서 팔짱을 끼고 신음하고 있었다. 지금은 라이브 한중간. 드링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물론이고 이쪽에 눈길을 주는 사람조차 없다.
 신음하게 만들고 있는 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히토리에게 받은 고백. 스스로도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하지 못한 고백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이쿠요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연애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고백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건 히토리와 자신 둘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거절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이쿠요를 불편하게 했다. 물웅덩이를 피하려다 또 다른 물웅덩이를 밟는 듯한. 마음 깊은 곳에서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왜일까…….”

 왜 고백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히토리가 슬퍼할까봐? 하지만 히토리는 애초에 사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연애가 밴드 해산 원인 1순위니까? 그렇다면 고백을 받고 히토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맞지 않았을까?
 만약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이쿠요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명확한 누군가와 사귀는 상상을 해 보았다.
 히토리와 함께 나가는 데이트.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할 테니까,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맛집 같은 곳을 가게 되겠지. 조용한 식당에서 애들이 좋아할 것 같은 메뉴를 시키는 히토리와 그것을 맞은편에 앉아서 바라보는 자신. 음. 여기까지는 실제로도 있을법한 일이다. 애인이라면 뭔가 좀 더 다른 일을 하는 걸까. 예를 들어,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거나. 하지만 그건 이미 해 봤는데. 팔짱도 그렇고. 끌어안기도 자주 했고. 히토리 짱은 뭐라고 했더라. 키스를 하고 싶다고 했던가. 히토리 짱과 키스…….
 상상하는 것은 지근거리에 있는 히토리의 얼굴. 히토리의 얼굴을 가까이서 본 적은 몇 번이나 있으니까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 속에 떠오른 그 얼굴에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사랑스러움이었다. 역시 키스를 하는 광경은 잘 와닿지 않았다. 어느 쪽이냐 하면 키스가 아니라 허그를 하고 싶다.

 “역시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뭐가?”
 “아, 이지치 선배.”

 티켓 접수를 담당하고 있던 니지카가 카운터에 들어온다. 라이브가 시작되고 한가해졌으니까 접수는 세이카가 맡아 준 것이리라. 혼잣말을 들킨 것이 조금 부끄러워서 이쿠요는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씨익 웃고는 “봇치 짱 때문에 그러지.”하고 말했다.

 “어, 이지치 선배가 그걸 어떻게…….”
 “글쎄, 왜일까~. 단지 봇치 짱이 키타 짱한테 푹 빠져 있단 거랑, 며칠 전에 고백했단 건 알고 있지.”
 “선배는 다 알고 있었던 거군요…….”

 이쿠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카운터에 손을 짚었다. 어차피 전부 알고 있다면 상관 없지 않을까. 이지치 선배는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이쿠요는 입을 열었다.

 “히토리 짱의 고백을 거절해야 할 것 같은데,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왜?”
 “그걸 모르겠어서 고민 중이에요.”
 “글쿠나.”

 니지카는 파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이쿠요를 바라보았다. 고백 받은 후로 계속 뭔가 고민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히토리와의 거리감으로 고민하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고백에 대한 대답으로 고민하고 있었다니. 히토리는 완전히 자기 사랑을 포기한 것 같았는데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히토리 짱, 고백할 때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사귈 생각은 없대요, 제가 그런 성향 아닌 거 안다고. 그러니까 그냥 알았다고, 미안하다고만 하면 되는데, 왠지 그 말이 안 나와서.”
 “내가 보기엔 키타 짱도 봇치 짱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하하, 그야 히토리 짱은 많이 아끼지만요…….”

 상냥한 이쿠요니까 소중한 상대를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단순히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닌 느낌도 든다. 그녀는 단순히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대답을 미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받을 수 없는 고백이라면 진작에 거절했을 것이다.

 “역시 여자끼리 연애는 이상하다고 생각해?”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그냥 먼 나라 얘기 같아서. 주변에서 본 적도 없고요.”

 그러고 보면 저번에도 그런 얘기 했었던가 하고 니지카는 멍하니 생각한다.

 “말을 안 할 뿐이지 어디든 있을 거라니까.”
 “으음, 그런 걸까요…….”
 “나랑 료도 사귀고 있거든.”
 “네?!”

 이쿠요의 놀라는 목소리가 라이브하우스 한켠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 소리도 라이브 중의 폭음은 이기지 못하고, 다행히 카운터 쪽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아, 죄송해요, 놀라서 그만.”
 “아하하……. 뭐 그런 거니까. 별로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이쿠요는 두 선배의 모습을 떠올린다. 늘 마이페이스인 료. 그리고 평소엔 상냥하지만 료에게는 엄한 니지카. 이쿠요가 보기에 둘은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족처럼 보였다. 그런 연인 관계도 있는 것일까. 두근거리는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연애는 성립하는 것일까. 이쿠요는 점점 더 잘 모르게 되어 간다.

 “이지치 선배는 료 선배를 좋아하는 거죠?”
 “응? 그야 그렇지.”
 “좋아한다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으음…….”

 니지카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상대가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후배를 보고 니지카는 설명을 덧붙였다.

 “상대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고 할까, 모든 기준에 상대가 녹아들게 된다고 할까. 집안일 할 때도 내 방에도 음악에도 전부 료가 들어 있거든. 내 삶은 이미 너무 많이 료한테 잠식당해서, 이젠 료를 빼 놓으면 내가 아니게 된다는 느낌?”
 “그게 사랑인 건가요?”
 “그게 싫지 않으니까 사랑인 거 아닐까? 뭐, 아마 료는 다른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해. 사랑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연애는 같은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하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것. 이쿠요는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선을 내리고 생각에 잠긴 그녀에게 니지카는 미소지었다.

 “그래도 키타 짱이 그렇게 열심히 고민한다는 건 그만큼 봇치 짱한테 애정이 있다는 거잖아?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든 분명 괜찮을 거야.”
 “그럴…까요.”
 “응. 봇치 짱도 키타 짱을 믿었으니까 고백을 한 거라고 생각해. 키타 짱이라면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야 당연하다. 이쿠요가 히토리를 미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야 이렇게나——
 그 순간 이쿠요는 깨달았다.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 무엇인지. 
 히토리를 좋아한다. 히토리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싶다. 히토리와 앞으로도 같이 있고 싶다. 가까이에서 히토리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랑이나 연애는 몰라도 그 마음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치? 키타 짱.”
 “……네.”

 사랑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것. 우정치고는 너무 무거운 이 감정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사랑이란 말은 어쩐지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


 자신의 자취방에서 히토리는 대자로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모처럼 휴일이라 아까까지는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로인이 왔고, 보낸 사람은 이쿠요였고, 그녀의 로인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내용을 확인.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놀러가도 돼? 그 한 문장뿐인 메시지에 기타는 스탠드로 돌아가게 되었다.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유일한 광원인 방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고 싶은 얘기라면 하나밖에 없다. 얼마 전에 했던 고백의 대답이다. 거리를 두고 싶다고 했는데도 굳이 집에 찾아오기까지 한다니 틀림없다.
 로인에는 네, 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대답은 거절일 게 뻔하잖은가. 바로 답하지 않고 시간을 달라고 한 건 분명, 내가 슬퍼하지 않게 거절할 말을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연락에 응한 건 단순히 거절할 배짱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부 나 때문이야.
 히토리는 이쿠요와 보냈던 즐거웠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점심시간과 방과후마다 기타 연습을 했던 일. 스튜디오 연습 전후로 분위기 있는 가게에 끌려 다녔던 일. 어떤 가사든 최고의 형태로 불러 주는 라이브.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인파도 감성 카페도 이쿠요와 함께라면 싫지 않았던 것.
 그런 즐거웠던 나날도 오늘로 정말로 끝. 처음부터 사귈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명확한 거절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애매한 거리감으로나마 묶여 있던 관계가 완전히 끊길 것만 같았다. 그런 상태로 밴드 활동은 계속 해야 하니 그런 잔인한 일이 또 없었다.
 고백 따위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걸. 그래도 어차피 밴드 활동은 힘들었으려나. 키타 짱을 좋아하게 된 게 문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역시 전부 나 때문이야.
 히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혐오에 빠지려 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꽤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히토리는 슬금슬금 일어나 문 밖의 인물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미안, 갑자기 찾아와서.”
 “아, 아뇨, 들어오세요.”

 이쿠요를 방에 들이고 마주보고 앉는다. 긴장으로 굳어 있는 히토리를 보고 이쿠요는 부드럽게 웃으며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있지, 지난번 고백 대답 말인데…….”

 예상했던 키워드에 히토리의 긴장이 절망으로 변해 간다.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 히토리 짱이 진짜로 소중하거든.”
 “에?”

 하지만 이어서 나온 말은 예상에는 없던 것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쿠요를 바라보지만 눈웃음을 짓는 이쿠요의 표정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히토리 짱이 고백해 줬을 때, 놀라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어. 하지만 역시 나는 그런 성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거절하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어쩐지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그 이유를 쭉 고민했어. 그건 아마, 히토리 짱의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히토리 짱이 너무 소중해서, 히토리 짱이 날 좋아한다는 마음을 내 사정으로 거절한다는 게 뭔가 아니란 느낌이 들어서.”

 히토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말은 ‘내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상대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에 초점이 있는 듯한.

 “히토리 짱이랑 있으면 재밌고, 기타 치는 모습은 멋있어서 동경하게 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계속 히토리 짱을 계속 좋아하고 싶어. 그러니까 그럴 수 있게 히토리 짱을 있는 그대로 전부 받아들이고 싶어. 아마도 이게, 내 사랑인 거라고 생각해.”

 거기까지 말하고 이쿠요는 손을 뻗어 히토리의 손을 잡았다. 두 손으로 살짝 잡혔을 뿐인 손끝으로 이쿠요의 애정과 진심이 전해져 왔다.
 히토리는 귀에 들어온 말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같이 있고 싶다. 동경한다. 계속 좋아하고 싶다. 그것들은 자신의 감정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연애감정이란 뭐가 다른 걸까. 나는…….

 “그래도 있지, 히토리 짱이 말한 것 같은 연애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가까이 간다고 두근거린다거나, 키스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서.”

 그건 확실히 그랬다. 히토리는 이쿠요를 보면 더 다가가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몸으로 그녀를 느끼고 싶었다. 그게 그냥 좋아함과 연애감정을 나누는 차이인 것일까.

 ”그러니까……. 히토리 짱이랑 완전히 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히토리 짱을 이해할 수 있게 나도 힘낼 테니까. 이런 나라도 괜찮으면…… 사귀어 주지 않을래?”

 이쿠요는 그렇게 말하고 히토리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히토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쿠요가 자신을 그렇게 소중히 여겨 주고 있단 걸 들은 것만으로 가슴은 행복감으로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연애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귀어 달라는 건 다른 얘기다. 이쿠요의 표정은 진지했고 단순한 연민이나 자기희생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란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다른 미래의 가능성보다도 히토리를 선택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이쿠요를 위한 일일까? 자신에게 그녀의 미래를 빼앗을 자격이 있을까?

 “정말……. 정말 저로 괜찮아요? 저는 키타 짱이랑 그, 저, 그렇고 그런 일도 할지도 모르는데…….”
 “애인이 되면 그렇고 그런 일도 하는 거겠지?”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남자보다 히토리 짱이 소중해.”
 “그치만 키타 짱은, 여자랑 연애는 생각해본 적 없다고…….”
 “아아, 정말!”

 사귀어도 되는 이유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사귀지 말아야 할 이유는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런 때조차도 자신보다 상대의 사정을 우선하는 히토리에게, 이쿠요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진심이란 걸 증명해 줄게.”

 어깨를 붙잡았던 손이 떨어져 이번엔 히토리의 뺨에 닿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굳어 있는 히토리에게 이쿠요는 자신의 얼굴을 가져가, 코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눈을 감고,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부드럽다. 두 사람은 똑같은 감상을 품었다.
 잠시 후 얼굴이 떨어지자 히토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히, 히토리 짱?”
 “키타 짱.”
 “으, 응.”
 “사랑해요.”

 그렇게 말하며 히토리는 윗몸을 일으키려다가 자신을 포옹하는 이쿠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도로 바닥에 누웠다. 숨 쉬기가 힘든 게 자신 위에 올라타 있는 무게 때문인지, 이쿠요가 몸통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서인지, 행복감 때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건 잘 알 수 없는 채로 두고 히토리도 이쿠요에게 팔을 둘렀다. 곧 둘은 옆으로 쓰러져 얼굴을 마주보았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바로 눈앞에 서로의 얼굴이 있었다.

 “제가 키타 짱한테 무슨 짓을 할까 봐 무서워요.”
 “해도 돼. 전부 받아들여 줄게.”
 “키타 짱을 상처입힐까 봐 무서워요.”
 “상처라고 생각 안 해.”

 단언하면서 이쿠요는 히토리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불안을 달래듯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히토리는 시야가 번져 가는 것을 느꼈다.

 “히토리 짱한테라면 전부 줄게.”

 이쿠요가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훑자 부예졌던 이쿠요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시야 한가득 히토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소가 비쳤다. 가슴에 가득 찬 감정을 쥐어짜듯이 히토리는 이쿠요를 힘껏 끌어안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온몸으로 서로가 느껴졌다.

 “키타 짱.”
 “응.”
 “……사랑해요. 사귀어 주세요.”
 “응. 나도 사랑해, 히토리 짱.”

 둘은 한참 끌어안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떨어져, 다시 한 번 입을 맞추었다.


***


 “근데 히토리 짱,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싶었길래 그래?”
 “엩.”


***


 “여차저차해서, 저희들 사귀기로 했어요.”
 “앗, 네.”

 며칠 뒤, 밴드 미팅에서 이쿠요와 히토리는 그런 보고를 했다.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잘 됐다고 축복해 주었다.

 “그래서, 실제로 사귀어 보니까 어때?”
 “히토리 짱이 먼저 스킨십을 해 와서 저는 엄청 기뻐요!”
 “오오, 봇치가 먼저…….”
 “에헤, 에헤헤…….”

 사랑이 이렇게 사람을 성장시키다니, 하며 료는 우는 척을 했다. 니지카도 그 말에는 놀랐는지 감탄하는 얼굴로 작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봇치 짱은?”
 “앗, 키타 짱한테 무리시키는 건 아닌가 살짝 불안했는데요, 키타 짱이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걸 보면 뭔가, 고백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헤헤…….”
 “히토리 짱, 요즘 계속 이런 느낌이에요. 헤벌쭉하다고 할까…….”

 곤란하다고 말하는 이쿠요의 표정은 히토리 말마따나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전혀 곤란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바보의 연애는 순조로운 듯했다.
 밴드 내의 고민거리가 하나 해소되어 개운해졌는지, 니지카가 밴드 미팅을 진행시킨다. 오늘은 새 가사 발표가 있었다. 히토리가 얼마 전에 3대째가 된 작사 노트를 꺼내 펼쳐 보인다. 어디어디, 하고 모두의 시선이 노트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침묵. 가사를 읽느라 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가사에 대한 반응으로서 생겨난 침묵이었다. 참지 못하고 히토리가 “아, 안 되나요…?”라고 목소리를 냈다.
 그 가사는 이제는 정말로 변명할 여지가 없는 러브송이었다. 그것도 제법 끈적끈적한.

 “이건…….”
 “왠지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어.”
 “히, 히토리 짱, 이걸 내가 부르는 거야…?”
 “그야 이쿠요가 부르라고 썼겠지. 내용이 그렇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응. 나도 이거에 곡을 붙이는 건 무리.”
 “뭐랄까, 응. 밴드 리더로서 이 가사는 기각하겠습니다!”
 “에엑!”

 모두의 반응을 보고 내린 적절한 판단에 히토리는 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아니, 그런 가사를 써 왔으면서 이렇게 될 줄 몰랐어? 하고 마음속으로 딴죽을 건다. 히토리의 반응을 보고 료가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불쌍한 봇치 짱. 앞으로 일주일은 이걸로 놀림받게 되겠군.

 “봇치. 이쿠요랑 잘 되고 있는 거 맞아? 사실은 더 하고 싶은 거 많이 있는 거 아니야?”
 “아아아아 아니 그런 건!”
 “어? 그런 거야 히토리 짱?”
 “브악! 아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반응이 아닌데……. 히토리 짱,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정면에서 이쿠요의 시선을 받은 히토리는 빨갛게 물들었다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쪼그라들었다.
 결국 가사도 퇴짜를 맞았고, 바람 빠진 비닐 튜브처럼 된 히토리를 수복하느라 시간도 꽤 지나서 밴드 미팅은 금방 끝이 났다.


***


 “진짜로는 어떻게 생각해요?”
 “뭐가?”
 “저랑 사귀는 거요.”

 둘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히토리가 물었다. 밴드 미팅에서는 스킨십을 해 오는 게 기쁘다고 했지만, 그건 사귀는 것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며칠간 히토리는 정말로 행복했다.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메꾸듯이 이쿠요는 매일같이 집에서 자고 갔다. 끌어안아도, 귀찮게 굴어도, 손을 잡아도 이쿠요는 싫어하지 않았다. 전부 받아들여 주었다. 히토리도 점점 익숙해져서 괜히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상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부 이쿠요가 자신에게 맞춰 주고 있는 것뿐이 아닌가? 사실은 자신의 행동이 이쿠요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언젠간 미움 받는 건…….
 불안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손이 이쿠요의 온기에 감싸였다. 그녀는 역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사귀길 잘했다고 생각해.”

 잡은 손의 손가락을 얽으며 이쿠요는 말을 잇는다.

 “히토리 짱, 뭔가 더 자연스러워 보이고. 행복해 보여. 그걸 보는 게 내 행복이기도 하니까.”

 옆을 걷는 히토리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히토리의 불안은 그 말만으론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사귈 때, 있는 그대로 전부 받아들이는 게 키타 짱의 사랑이라고 그랬었잖아요?”
 “응. 그게 왜?”
 “그건 제 억지를 키타 짱이 받아주기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억지를 받아준다는 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히토리의 본성 그 자체를 사랑한다고 할까. 애초에 그녀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진짜로 싫었으면 거절했을 거고. 키스도 같이 자는 것도.”
 “아…….”
 “오히려 이제는 해도 되는 스킨십이 늘어나서 잘 됐다는 느낌! 앞으로도 잘 부탁해, 히토리 짱!”
 “앗, 네.”

 그제서야 히토리는 이쿠요를 따라 살짝 미소지었다. 이쿠요도 만족하고 맞잡은 손을 흔들면서 남은 귀갓길을 걷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말을 꺼내 본다.

 “그러고 보면 히토리 짱한텐 못 들었네. 좋아한다는 건 뭘까 하는 얘기.”
 “어, 글쎄요. 예전에 료 씨한텐 들은 적 있어요. 분명……. 상대를 내 걸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 이랬던가.”
 “후후, 료 선배답네. 나도 이지치 선배한테 들은 적 있어. 상대가 내 일부가 되는 거라고.”
 “뭐랄까, 두 사람답네요.”
 “그러게.”

 서로 다른 마음이 합쳐져 하나의 관계를 이룬다. 두 선배는 미묘하게 다른 감정으로 균형을 이루어 연인인지 가족인지 모를 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히토리는 자신의 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그럴듯한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익숙했다. 자신이 쓰는 가사란 대체로 그런 것들이었다. 여태껏 써온 가사들과 지금의 감정을 되돌아보며 히토리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아마 저는, 같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밴드를 시작했을 때부터 변하지 않는 감정. 모두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그리고 그건 이쿠요를 사랑하는 지금도 마찬가지. 자기 혼자 행복하다고 해도 그건 의미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걸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히토리의 사랑이었다.

 “……역시 사귀길 잘했다고 생각해.”
 “네?”
 “으응, 아무것도 아냐. 히토리 짱답네!”
 “그, 그런가요?”
 “응!”

 조용한 주택가. 칠칠치 못한 웃음을 흘리는 히토리를 바라보며 이쿠요는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행복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히토리를 사랑하자고.
 서로의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해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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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일본어판도 있습니다. (링크)

오랜만에 끝까지 글을 써 내서 기분이 좋네요. 재밌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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