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아이마스SS]단절의 방아쇠, 이별의 총탄
카와즈
2015. 10. 2. 11:25
하루카의 미주mind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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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원작자의 허가를 받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495605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それは、裸足のままの恋でした)
8. 단절의 방아쇠, 이별의 총탄
※이 소설에서는 이름 뒤에 붙는 모든 호칭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어……."
쿵.
짧은데도 무섭도록 위력적인 프로듀서님의 말은, 내 머리에 꽂혀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너무도 충분했다. 할리우드? 내가? 미키랑?
"그쪽 영화에 둘 모두 주연이란 식으로 얘기가 들어왔어. 미키는 이전 영화가 호평이었고, 하루카도 아이돌 어워드 수상이 그쪽 눈에 들었나 봐. 물론 둘의 의견을 듣고 나서――"
"물론 미키는 오케이인 거야! 허니도 갈 거지?"
"나, 나는 이쪽에서 평소대로 모두를 프로듀스해야 하니까……."
프로듀서님의 말을 끊을 기세로 바로 대답한 미키에 이어서, 승낙하는 말을 하려고 열려던 입이 멈추었다. 어라……? 왜일까.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시선을 움직인다. 뒤돌아보고, 다시 한 번. 모두의 얼굴을 둘러본다. 다들 있다. 이전 아레나 라이브 공연 결정을 들었을 때도 비슷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도 프로듀서님이 모두를 모아놓고 말했다. 좋은 뉴스가 있다고. 사무소 사람들 모두가 자기 얘기인 것처럼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렇다, 기쁘다. 나도 물론. 하지만 그건 어째서인지 천천히 음미하고 나서 삼킨 것 같은 기쁨이고, 조금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켜서 끌어낸 것 같은 기쁨이다.
왜일까. 아레나 라이브가 결정됐을 때는 나도 모르게 몸을 쑥 내밀 정도로 기대되고 기뻤는데. 이게 예를 들어서 "돔 라이브야!" 같은 거였다면, 그때와 같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치하야 짱을 바라본다. 그녀도 역시 나에게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눈은 맑고 예뻤지만, 어라, 하지만 그 눈에서는 무언가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마치 낮에는 조금만 얼굴을 가까이 대면 돌아다니는 물고기나 바닥의 해초나 조개도 보이는데, 빛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밤바다 같은.
두근,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건, 이 큰 답답함은, 불안? 아니, 아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 난 깨닫지 못했다.
나인데, 내 일인데, 왜인지 내가 멀다.
치하야 짱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려다, 다시 닫는다. 지금 이 장소에서 치하야 짱은 내게 말을 바라는 게 아니고, 나도 치하야 짱에게 말을 걸 필요는 없었다. 그런 아무래도 좋고 당연한 사실도 내 뒤를 두 걸음 늦게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다.
"미키 있지, 또 허니랑 할리우드 데이트 하고 싶어! 그럼 미키, 엄청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야!"
"알았어, 무사히 촬영 끝나고 일본에 돌아오면, 어디든 원하는 데에 따라가 줄 테니까……."
정면을 다시 보니, 프로듀서님은 평소와 같은 곤란한 표정으로 미키를 달래고 있었다.
시선을 떨어뜨리고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내가 지금 ‘갈게요’란 한 마디를 못 하는 건, 어딘가 걸리는 게 있는 것만 같이 순수하게 기뻐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모두와 함께'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우리들만 할리우드에 간다는, 미안함……?
"하루카는 어떡할래?"
프로듀서님이 내게 말을 건다.
"하루카도 갈 거지?"
미키가 나를 본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다. 하지만 돌아볼 수가 없었다. 왜일까, 무섭다.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다는 게, 갑자기, 이유도 없이 무서워졌다.
하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망설일 선택지도,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인 아마미 하루카에게는.
얼굴을 든다. 앞을 본다. 드디어 바다 너머로 갈 수 있다.
동경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내 동경은――
"갈게요. ……가게 해 주세요, 할리우드."
……
…
얘기가 끝나고 나서, 프로듀서님이 조정을 마친 스케줄 표를 두 장 건네주셨다. 하나를 화이트보드에 붙이고, 손에 남은 다른 하나를 내려다본다.
"11월 1일에 저쪽으로 가니까, 앞으로 3주일하고 며칠이구나……. 으엑, 다른 일이 조금씩 당겨졌어……."
옆에 있던 리츠코 상도 내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바쁘겠지만, 일을 남겨두고 보낼 수도 없잖아. 도울 수 있는 건 도울 테니까 열심히 해."
"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금방 긴 머리를 등까지 늘어뜨린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그 쪽으로 가려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뭔가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무엇을 위해?
……아까부터 생각해도 의미가 없는 질문만 계속 떠오른다. 성가시다. 생각하기보다도 먼저 발을 내딛었다.
"저기, 치하야 짱."
미키와 얘기하고 있던 치하야 짱이, 바로 뒤에서 부른 나를 돌아보고 웃음 지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있지, 그, "
무엇을 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말로 나올 리가 없다. 스스로 말을 걸어 놓고, 말이 막혔다.
치하야 짱이 내 말을 기다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 사실은 할리우드에 가게 됐어."
"나도 알아. 축하해, 하루카."
그야 그렇지. 같은 순간에 그걸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미소와 함께 받은 축복에, 나는 따끔한 아픔을――
어?
아픔……? 어째서.
"어, 그러니까……고마워?"
"왜 의문형인 거야?"
"아, 응, 그렇지, 이상하지. ……그래서 있지, 그러니까, 일이 바빠서, "
뭐야, 그게. 최고로 어찌되든 상관없다. 그런 게 아니라, 좀 더 뭔가, 뭔가,
"그래서……. 아, 생방임까 레볼루션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싶어서."
우리들이 메인 퍼스털리티를 맡은 TV 프로그램 이름을 댔다. 응, 이것도 일단 중요한 이야기니까? 그럴 거다.
"그건 미키도 걱정인 거야. 하루카랑 미키가 할리우드 가면 치하야 상 혼자잖아. 괜찮겠어?"
"전혀 괜찮지 않아. 나 혼자선 도저히 프리 토크를 진행할 수가 없는걸. 둘이 없는 동안에, 누군가 대신――"
셋이서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에게 맡겨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들 개성이 강하니까 어딘가 불안한 요소가 생긴다. ……괜찮을까, 이 사무소.
"――새삼스럽게 생각하지만, 하루카의 평범함은 귀중한 거였어."
"에헤헤, 고마워, 치하야 짱……근데 그거, 칭찬하는 거지?"
"하루카는 잘 넘어져서 불안하지만, 평범히 일을 하는 데는 안정감이 굉장해."
"미키, 그렇게 덧붙여도 있지, 조금은 상처받아."
다시금 자신의 위치가 슬퍼진다. 프로듀서님이 날 리더로 임명한 것도, 이런 평범한 안정감만 평가했던 게 아닌가 불안해진다. 뭐어 그것도 일종의 신뢰라곤 생각하지만서도. ……나,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겠지?
"음, 아즈사 상은 어때요? 생방임까 사회자요."
이 이상 디스가 나오기 전에 가까이 있던 아즈사 상에게 도망쳐 본다.
"나? 상관은 없는데, 별로 그런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진행이 산으로 가 버릴지도 몰라."
"그, 그렇군요."
아즈사 상이 산으로 간다는 말을 하면 묘하게 설득력이 생긴다. 한쪽 손을 뺨에 대고 고민하는 아즈사 상 뒤에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프로듀서님이 이쪽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거라면, 둘이 없는 동안에 모두가 매주 교대로 치하야를 도와주자고 생각하고 있어. 누가 옆에 있으면 일단 어떻게든 될 것 같지?"
"네. 고맙습니다, 프로듀서."
치하야 짱이 안심했는지 벽을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둘 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알았어! 허니도 약속 잊어버리지 마!"
솔직하고 거짓 없는 호의와, 가까운 미래에 머나먼 땅으로 간다는 기대로 반짝이는 미키의 눈을, 난 더 이상 직시할 수가 없었다.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나도 기대하고 있다. 과거 출연했던 어떤 작품보다도 큰 무대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할 수 있다. 그야 영화가 좋고 나쁘고는 규모로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꿈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언젠가 세계의 스테이지에서 노래나, 댄스나, 연기를 하는 것. 한 명의 평범한 소녀가 꿈꾸기에는 너무나 멀고, 높고, 큰 동경심.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걸.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 건 나 자신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포기해서 없었던 일로 할 만큼, 요령 좋게 살진 못 할 것 같았으니까.
꿈이 또 하나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고민거리도 하나 줄었다. 하지만 왜, 뭔가가 부족한 것 같은, 마음 일부를 다른 곳에 두고 온 것 같은 걱정이 가시질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말이지.
내 마음은, 걱정은 어디에 있는 걸까.
………
……
…
바쁜 나날이었다.
소시지처럼 줄줄이 들어찬 예정에 휘둘리길 계속하면서, 어느새 찾아온 10월 마지막 월요일. 주말엔 이미 난 미국에 있겠구나 생각하면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영어 공부도 해 놓고 싶었지만 통근 전철에선 단어장을 꺼내는 것도 겁날 정도로 피곤해서, 결국……응.
다음 일, 라디오 수록까진 꽤 여유가 있어서 사무소에서 느긋이 쉬려고 편의점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사가지고 왔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선택해서 사무소가 있는 층까지 올라간다. 고맙다, 문명이여.
"안녕하세요~"
"하루카……수고했어."
"아, 치하야 짱!"
사무소에 들어가자 치하야 짱이 소파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요즘은 주말에 하는 생방임까 말곤 얼굴 마주칠 기회도 없었으니까, 이틀 연속으로 만난 게 왠지 기뻐서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지고 말았다.
"그렇지. 특히 하루카는 바빴으니까. 괜찮아?"
치하야 짱이 이어폰을 빼고 코드를 말고 나서, 염려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좀 힘든 게 재밌는 법이야."
좀 허세를 부리면서, 편의점 봉투를 테이블 위에 두고 치하야 짱 옆에 앉는다. 솔직히 좀 피로가 쌓였는데, 치하야 짱 얼굴을 보니까 신기하게도 다 날아갔어. 그런 말은 좀 부끄러우니까 가슴 속에 넣어 두었다.
다시 사무소 안을 둘러보니, 어라? 아무도 없다.
"지금은 코토리 상도 없어?"
"오토나시 상은 아까까지 있었는데, 점심도 먹을 겸 사무용품을 사러 나갔어."
흠. 지금 이 사무소엔 치하야 짱과 나 둘뿐이다. 치하야 짱과 나 둘뿐이다. 딱히 의미는 없지만, 두 번 말해 봤다.
"치하야 짱은? 오늘은 벌써 일 끝났어?"
"난 지금 타카츠키 상을 기다리는 거야. 다음 TV 게스트 수록에 같이 가니까."
"그렇구나. 요즘 치하야 짱, 야요이랑 같이 하는 일 많지 않아?"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랑 타카츠키 상은 잘하는 게 다르니까 별로 그럴 기회는 없을 거라고 여겼는데. 저번 주에도 둘이서 같이 촬영이 있었어."
"헤에~"
어쩐지, 얘기하고 있는 치하야 짱이 유난히 생기가 넘쳐 보인다. 식물이 3배속으로 성장할 만큼 눈이 반짝인다.
"잡지 기획으로 스튜어디스 옷을 입었었는데, 뭐라고 할까, 대단했어. 보통 그런 옷은 성인 여성이 입는 건데, 타카츠키 상이 입으니까 다른 매력이 있는 거야. 원래 코스튬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타카츠키 상의 귀여움 같은 걸 잘 끌어내서. 분명 타카츠키 상이랑 같이 여객기에 타는 승객은, 너무 높은 곳에 와서 결국에는 천사들이 사는 곳에 온 게 아닌가 착각할 거야."
"그, 그렇구나……."
정말 행복하게 말하는 치하야 짱의 머릿속은 분명 그 때 야요이 모습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나인데.
"그거, 혹시 내가 입으면 어떤 느낌일까?"
"글쎄. 타카츠키 상과 하루카의 매력은 또 다르니까."
순식간에 진지한 얼굴로 돌아갔겠다, 이봐. 치하야 짱에게 악의는 없었겠지만 어쩐지 짜증이 밀려온다.
"됐어, 됐어. 어차피 치하야 짱은 야요이를 좋아하니까."
"……그렇지. 타카츠키 상을 좋아하는 것과 하루카를 좋아하는 것도, 또 다르지."
왜 그렇게 슬픈 것처럼 웃을까. 별로 귀엽지도 않은 나를 향한 동정입니까, 그런 겁니까. 아까 반짝이던 눈은 어디로 간 거야.
"――흥이다. 야요이 얘기만 잔뜩 그렇게 신나서 얘기하고. 치하야 짱은 내가 없어도 어차피 아무렇지도 않지?"
왜일까, 아까부터. 자신의 안쪽에서 나쁜 감정만 흘러나온다. 멈추질 않는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잔뜩 눌린 까만 무언가가 유일한 출구를 찾아낸 것처럼 입에서 흘러나온다.
"한동안 못 만나게 되는데. 난, 나만, 쓸쓸――"
쓸쓸하다니, 바보 같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깨닫고 당황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뒤늦게 납득한다. 기세를 타고 넘칠 뻔한 말 속에서,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찾아냈다.
쓸쓸함. 그렇구나. 난 쓸쓸한 거구나. 치하야 짱과 헤어지는 게. 그러니까 할리우드에 가게 된 걸 솔직하게 좋아할 수 없었던 거구나.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어린애 같다. 확실히, 쓸쓸하긴, 하다. 하지만 그 감정과 큰 일을 맡은 기쁨을 천칭에 올린다고 해도, 후자가 압도적으로 무겁다. 그럴 거다.
아직이다. 아직 부족하다.
그 때 내 안에서 해외로 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무거웠던 것.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입을 꾹 다문 채로 시선을 떨군다. 급속도로 식은 머리에는 후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해 버렸을까. 유치하고 불안정한 자신에게 엄청난 혐오감이 들었다.
"하루카……."
당황한 듯한 치하야 짱의 목소리. 그야 그렇겠지, 나도 영문을 모를 소리를 갑자기 들으면, 누구라도 곤란해한다.
내 시선 끝에서, 다리 위에 올라가 있던 치하야 짱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하지만 곧 망설이듯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힘없이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둘만 있는 사무소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야 해.
"아, 아하하, 미안해, 치하야 짱……. 뭔가 나, 역시 지쳤나 봐."
건조한, 갈라지는 듯한 웃음. 이상하다. 웃음은 내 몇 안 되는 세일즈 포인트였을 텐데.
"일이 밀린 것도 그렇지만, 환경이 크게 바뀐다는 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스트레스가 돼."
얼굴을 들어 보니 치하야 짱은 따뜻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배려에 어리광을 부린다.
"치하야 짱, 레코딩으로 해외 나간 적 있었지. 조언 좀 해 줘~."
"처음엔 역시 긴장하고 불안했지만 의외로 금방 익숙해졌어. 말도, 잘 못해도 어떻게든 되는 법이야."
"아, 그거, 특히 걱정돼. 나 정말로 영어 못하니까."
"일상 회화 정도는,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해서 침착하게 들으면 분위기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 그래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잘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한 건 자주 있지만. 제대로 공부해 둘 걸 그랬다고 많이 후회했어."
"한 번 그런 후회스런 경험을 하면 영어도 공부할 생각이 들게 될까?"
"나도 뉴욕에 있을 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돌아오니까 결국 평소랑 똑같았어. 유감스럽게도."
"아하하, 역시 그렇지."
아까보단 제대로 웃은 것 같다.
"고마워, 치하야 짱. 조금 마음이 편해졌어."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무것도 안 했는걸. 대신 이 빵을 받을게. 마침 배가 고팠어."
"아, 잠깐만, 그거 내 점심이야! 감사는 필요 없었던 거 아니었어!?"
치하야 짱이 비닐봉지에서 꺼낸 팥빵을, 당황하면서 잡아챘다. 잠깐 생각하다가 봉지를 뜯고 빵을 반으로 나눠서, 한 쪽을 치하야 짱에게 내민다.
"……자."
"고마워. 잘 먹을게."
둘이서 반으로 나눈 팥빵을 먹는다. 달콤한 팥앙금과 치하야 짱의 다정함으로 몸의 긴장이 풀린다. 치하야 짱은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을 테고, 그다지 배고프지 않았을 텐데.
문득 프로듀서님이 이 사무소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의 TV 수록을 떠올린다. 그 때는 얼어붙은 요리 프로그램 분위기를 내가 풀었던 적도 있었는데.
다음 주 생방임까부터 미키와 나는 없지만, 실제로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 조금 쓸쓸히 생각한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덤벙대서 치하야 짱의 방해가 될 정도인 걸.
빵을 위장에 집어넣고 일어선다.
"나, 차 끓여 올게."
역시 난 제멋대로다.
설령 치하야 짱이 날 필요로 하지 않아도. 나와 당분간 만나지 못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도.
난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없으면 쓸쓸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걸.
조금은 치하야 짱도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역시 난 제멋대로다.
그런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치하야 짱과 헤어지는 편이, 훨씬 더 싫었다.
………
……
…
그러저러해서, 10월 마지막 날. 내일은 벌써 비행기로 할리우드에 가는 날이다. 그런 날 전야에 난 이렇게 치하야 짱네 집에 가고 있다.
정작 그 치하야 짱에게는, 내가 지금부터 집으로 간다는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약속 없이 쳐들어간다는 최고로 민폐인 짓을 하려고 한다.
그치만 그치만, 정말 제멋대로면서도, 오늘은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10월 마지막 날. 10월 31일. 즉, 할로윈! 아이들이 과자를 달라고 조르러 여러 집을 돌아다니는 날이에요!! 어차피 난 애야, 됐지!?
반쯤 강제로 자신을 납득시키면서, 치하야 짱네 집에서 가까운 역에 내렸다. 개찰구를 나와서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풀려 있던 코드 위쪽 단추를 잠갔다.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해, 걸어 나간다.
만약 치하야 짱이 아직 안 돌아왔으면 어쩌지. 열쇠를 받았다곤 해도, 역시 한 마디 말도 없이 멋대로 들어가 있을 수도 없고…….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얼빠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걸으면서 신음했다.
하지만 놀러 가는 걸 알리고 싶진 않았다. 별것 아닌 아마미 서프라이즈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만약, 만약 치하야 짱이 "내일은 바쁘니까 오늘은 못 놀아." 같은 말을 하면 어쩌지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오늘이 정말로 정말로 마지막 날. 그야 다시는 못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올해는 이제 못 만난다.
요 1주일간 사무소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개성 넘치는 응원을 들었다. 덤으로 조금 걱정도 받았다. 분명 일종의 신뢰일 것이다. 거의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배웅해 주었다. 치하야 짱도 그렇다.
그렇긴 한데.
치하야 짱에겐, 치하야 짱만은 조금 다른, 좀 더 특별한 뭔가를 기대해 버린다. 바라고 만다. 애타는 듯한, 초조한 듯한, 충동 그대로. 무엇 때문에 초조한 건지도 모르지만.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치하야 짱하고 다시 한 번 만나면 뭔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조금 더 개운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런 생각 또한, 내 발을 치하야 짱네 집으로 향하게 했다.
문득 답장을 쓰다가 만 학교 친구 메일이 생각나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앗. 새로 온 읽지 않은 메일 제일 위에, 발신인 '치하야 짱'. 기대에 가슴이 뛰는 걸 의식하면서, 5분 전 쯤에 온 제목 없는 메일을 열었다.
『갑자기 미안해. 지금 우리 집에 올 수 있어?』
………….
으음, 확실히 너무 갑작스러운데. 나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 치하야 짱네 집 같은 데에 갈 여유는 없는데 말야.
하지만 꼭 치하야 짱이 와 달라고 한다면,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는 나를 만나고 싶어해 준다면, 가 줘도 되려나.
……어쩔 수 없구만.
발이 향하는 방향은 전혀 바꾸지 않고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한다. 어느새인가 빠른 걸음이 돼 있었지만, 속도는 늦추지 않고 치하야 짱네 집을 향한다.
메일을 차례로 정리하면서 뭐라도 사갈까 하고 폐점 직전인 슈퍼마켓에 뛰어들어갔다.
………
……
…
"트릭 오어 트리트!"
눈앞에서 문이 쿵 하고 닫혔다. 기죽지 않고 다시 한 번 인터폰을 누른다. 문이 조금 열렸으니, 분명 치하야 짱은 틈새로 이쪽 상황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상태로는 저쪽이 보이지 않는다.
"저, 치하야 짱, 트릭 오어 트리트……."
"미안하지만 난 지금 소중한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 호박은 부른 적이 없으니까 돌아가 줄래?"
"그 소중한 친구는 혹시 이런 얼굴 아니었니?"
힛힛히 하고 산속 오두막에 사는 마녀처럼 웃으면서, 천천히 눈 위치에 들고 있었던 호박(128엔)을 내렸다. 오랜만에 만난 치하야 짱은 상당히 재미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 하루카. 꽤 빨리 왔네."
"그야, 마법의 빗자루로 한번에――"
"역시 가짜였구나."
다시 문이 쿵 하고 닫히고, 호박 4분의 1조각을 끌어안은 나는 홀로 쌀쌀한 복도에 남겨졌다. 덧붙여서 이번엔 문을 잠그는 소리도 세트다. 너무해.
"치하야 짱, 열어줘……."
굳게 닫힌 동굴 문과 일체화돼 있는 우편함 뚜껑을 열어서, 몸을 숙이고 목소리를 흘려넣는다.
"정말로 하루카란 말이지?"
"당연하지, 그냥 할로윈 조크였어."
"그럼 본인확인을 할게. 패스워드를 입력해 주세요."
"그런 거 몰라."
"패스워드를 잊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인증할 수밖에 없겠네. 비밀 질문 1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경험은?"
"그걸 왜 말해야 하는 거야! 그보다도,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으니까 치하야 짱도 모를 테고, 확인에 못 쓰지!?"
"즉 있다는 거구나. 신경 쓰지 말고 말해."
"나는 신경 써! 됐으니까 들여보내 줘, 치하야 짱은 이런 추운 날에 수치 플레이를 시키려고 날 부른 거야?"
"내가 진짜 하루카한테 메일을 보낸 건 고작 15분 전이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르잖아."
"내가 진짜 아마미 하루카라니까."
"그럼 이 단시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를,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봐."
으음. ……으음.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는 건 좀 그렇고……뭔가 부끄럽다. 하지만 역시 치하야 짱, 철벽 방어. 이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고, 깎아지른 절벽 끝에 내몰린 패군의 장수처럼 마음을 굳게 먹고 도망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굳힌다.
"치하야 짱을 너무 좋아하는 난 있지, 할리우드에 가기 전에 꼭 다시 한 번 치하야 짱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살짝 몰래 놀러 가려고 했어! 일본을 떠나기 전에 제일 소중한 친구를 만나러 가도 괜찮잖아! 그게 싫으면 내 제일 소중한 친구가 아니게 되는 방법밖에 없다구!"
바아보.
바보, 바보, 바보 치하야 짱. 날 괴롭힌 벌이다. 부끄러워해라, 부끄러울 만큼 부끄러워서, 완전히 부끄러워져 버려라. 동굴에 숨은 아마테라스오카미는, 새빨개진 자기 볼에 손을 대고 데리야키가 돼 버려라. 하지만 태양 그 자체보다도 뜨거워져 있을 나 자신도, 스스로 한 말에 목이 타들어가서 몸부림칠 것만 같다. 바보 하루카 구이 한 접시 나왔습니다!
문 너머, 무음. 침묵과 추위와 부끄러움에 몸이 근질거려서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지만 꾹 참는다. 1분 쯤 기다렸을까.
기다리다 지쳐서 세 번째로 인터폰을 누르려고 했을 때, "그렇지."하는 짧은 말과 함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놀랍게도 내 소중한 친구가 맞는 것 같네. 기다렸어. 그다지 안 기다렸지만."
"내가 문이 열리길 기다린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아. 실례합니다~."
염원했던 현관에 발을 들이고 신발을 벗고 나서 치하야 짱을 따라갔다.
"하루카가 이상한 짓을 하니까 그렇잖아. 뭐야, 그게."
불을 켜 둔 부엌에서 두 사람 분 홍차를 내리면서, 치하야 짱이 내 손에 들린 '그거'를 다시금 수상하게 바라본다.
"이건 있지, 호박이야."
"나도 알아. 그걸 왜 우리 집에 가져왔냐고 묻는 거야."
둘이서 테이블을 끼고 앉아, 바로 홍차를 마시려는 치하야 짱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할로윈 가장 도구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저기 슈퍼에서 사왔어."
"그럼 적어도 오렌지색으로 그럴듯한 걸 사 와……. 그런 초록색 호박은 그냥 식재료잖아. 4분의 1밖에 없고."
"잘 안 판단 말야, 그거. 코스프레 세트 같은 것도 있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좋지? 그러니까 줄게!"
"별로 고맙진 않은데, 먹을 걸 버릴 순 없으니까 일단 받아 둘게."
치하야 짱이 랩으로 싸인 호박을 받아서 테이블 구석에 두었다. 이어서 내가 가져온 슈퍼 봉지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야채나 그런 거야?"
"아깝다, 치하야 짱. 이쪽은 사과에요~."
봉투에서 사왔던 두 개 전부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이것도 정말로 둔탁하고 좋은 소리가 나는군요.
"참고로 이쪽은 컷팅되지 않은 미품입니다."
"잘 됐네. 그래서?"
"아, 혹시 치하야 짱 몰랐어? 사실 해외에선 할로윈이라 하면 호박하고 사과야.
"그것도 알아. 그걸 내가 어떡하면 좋을지 묻는 거야.
"부디 받아 주십시오."
"솔직히 지금 바로 먹을 수 있는 과자를 받는 편이 훨씬 기뻤을 것 같은데."
"뭐, 조금이라도 할로윈 기분을 즐기자는 의미에서. 이것도 일단 테이블에 장식해 두자."
이걸로 간소한 테이블이 할로윈 사양으로 탈바꿈! 하지는 않는다.
"아, 과자라고 하면 있잖아, 할로윈 전통 과자 중에 사과를 써서 바로 만들 수 있는 게 있어. 사과를 캐러멜로 코팅한, 이름하여 캐러멜 애플!"
"그건 몰랐네. 이름 그대로구나."
"응. 캐러멜 애플은 있지, 그야말로 일본의 사과 사탕 같은――"
『치하야 짱, 이 사과 사탕, 엄청 맛있어 보여. 먹을래?』
갑자기 뇌리를 스친, 여름 축제 풍경. 불꽃놀이가 끝난 어둠 속, 두 줄로 늘어서서 흔들리던 등롱 불빛. 그 인파 속을 치하야 짱과 떨어지지 않게 걸어가는 나.
지금 그건 그날 꾼 꿈? 아니면 현실 쪽?
꿈속에선 치하야 짱은 내가 내민 사과 사탕을 받아 주었다.
"――과자인데, 꽤 간단히 만들 수 있어서――"
『필요없어.』
흥미 없어 보이지만 조금 어색한 거절의 목소리. 하필이면 왜 지금, 그 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말았을까.
그 때 나는 치하야 짱에겐, 폐가 될 뿐이었다.
지금, 나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폐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연락도 없이 치하야 짱네 집에 가려고 했던 나는. 치하야 짱이 보낸 와 달라는 메일만으로 신이 나는, 그런 나는.
치하야 짱네 집에 가는 것만으로 두근거리고 마는 그런 나는, 같이 있으면 미움을 받게 될까.
그러고 보니 오늘 치하야 짱은 왜 날 불렀을까. 씁쓸한 한여름 일을 떠올리고 말았지만. 나도 치하야 짱에게 뭔가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 조금이라도 나처럼, 떨어지는 걸 쓸쓸하게 생각해 주는 거라고 받아들여도 될까.
눈을 내리깔고 말끝을 흐리는 나를, 치하야 짱은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보고 있었다. 응, 그걸 묻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내 용건을 먼저!
"응, 잘 생각해 보니, 오늘만은 내가 과자를 주는 건 아닌 것 같아."
"하루카, 오늘은 와 줘서 고마워. 또 언젠가 만나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 치하야 짱. 트릭 오어 트리트!!"
슬쩍 치하야 짱이 테이블에 놓인 호박을 내게 내밀었다.
"치하야 짱, 이건 펌프킨. 아이 원트 트리트."
"하루카, 아까부터 생각했었는데. 내일부터 할리우드에 가는 거지?"
"그런데 왜?"
"발음을 좀 더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시, 시끄러! 과자 안 주면 장난칠 거야!!"
아픈 곳을 찔려서 화내는 제게, 그, 동정 어린 시선은 그만해 주지 않으시겠어요?
"큰일이네. 과자는 평소에 별로 안 사니까, 지금 줄 만한 게 없어. 목캔디라도 괜찮다면야 줄 수 있는데."
"그건 있지, 산타가 준 선물이 노트랑 연필이었다, 그런 것처럼 상냥하면서 잔혹해. 무척 실용적인 건 분명하지만 꿈이 없잖아."
"그럼 아무것도 못 줘."
"그렇구나, 아무것도 없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면서 테이블을 피해, 갑자기 치하야 짱 등 뒤로 돌았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치하야 짱이 화들짝 놀라면서 돌아보았다. 늦었어. 그대로 꼭 끌어안고 "하, 하루카!!???" 치하야 짱의 비명은, 무시한다. 그리고 가느다랗고 깨끗한 목덜미에, 쪽,
……쪽 하면, 아무리 그래도 혼날 테니까. 하지는 않지만.
치하야 짱이 돌아본 방향 반대편 어깨에 내 턱을 올린다. 치하야 짱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하루카, 이건, 무슨 짓이야?"
"으음, 할로윈이고, 흡혈귀라도 돼 볼까 해서. 치하야 짱이 과자 안 줬으니까."
"……그래서?"
"장난칠 거야."
"여, 영문을 모르겠어……."
후후후. 맘껏 홀리고 공포에 떨어라. 치하야 짱과 내 몸 사이에 조금 빈틈을 만들어서, 치하야 짱의 등 위부터 아래까지 검지로 쓸어내려 봤다. 내 손가락에서 도망치려고 치하야 짱이 꼼지락거리면서 몸을 튼다.
"하루카, 그, 그만."
"그만 안 둬. 안 그만둘 거야. 치하야 짱한테 어른의 장난을 할 거니까."
"10년 일러."
"……그런 말 하는 사람한텐, 이렇게 해야지."
다시 양 팔을 치하야 짱 배 위에 두르고, 꼭 달라붙었다. 그대로 내 코끝을, 치하야 짱 어깨에서 목덜미 가까운 곳에 묻었다. ‘읏’하는 작은 숨이 내 귓가에 닿아서, 두근거린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는다.
"하루카, 이제 그만――응아읏"
코끝을 댄 채로 문질문질 하자, 치하야 짱의 목소리가 연약하게 사라졌다. 살짝 올려다보니, 연약하게 눈을 감고 눈썹 끝을 내린 치하야 짱의 옆얼굴이. 큐웅.
……뭘까, 이거, 굉장히, 두근거린다.
"저기, 이제, 좀 놔 줘."
"좀만 더, 안 놔줄래."
양 팔에 꼭 힘을 주었다. 치하야 짱을 나 혼자 독차지. 오늘 밤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어쩔 수 없지, 과자를 준비 안 한 치하야 짱이 잘못한 거야.
가끔은 이래도 괜찮겠지. 한동안 치하야 짱을 못 보게 되니까.
할 수 있을 때 치하야 짱 성분을 잔뜩 보급해 둬야지.
얼굴을 아주 조금 들었다. 내 입술 바로 옆에, 치하야 짱의 뺨과 입술 끝이. 눈을 감고 있어도 치하야 짱의 볼이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한없이 0에 가까운 거리.
달라붙으면 어떻게 되지? 난 어떻게 하고 싶지?
그건 내 안에서 처음 생긴 의문이었던 것 같다. 아니, 비슷한 걸 자신에게 물었던 적도 있었던가? 어땠더라. 열에 들뜬 것 같은 머리로 생각해 본다. 생각하려고 해 본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생각해 버리면 더 이상,
나는――
치하야 짱이 내 양 팔을 풀고 튀어오르듯이 일어섰다. 구속이 약해졌었나 보다. 유감인걸, 모처럼 치하야 짱 피버 타임이었는데.
……아, 혹시 좀 지나쳤을까. 치하야 짱, 화났을까. 겁내면서 올려다보니, 그 눈동자에 서린 것은,
――두려움? 어째서.
바닥에 앉은 채로 치하야 짱과 서로를 바라본다. 먼저 어깨에서 힘을 뺀 건 치하야 짱이었다. 갑자기 표정을 무너뜨리나 싶더니, 입을 반쯤 가리듯이 코 밑에 검지를 대고, 왜인지 웃기 시작했다.
"……후훗. 역시 하루카는 하루카구나."
"응? 그야 그렇지."
분위기가 이완된 걸 느끼면서도 난 모르는 것투성이다.
치하야 짱이 내 옆에 앉았다. 멍하니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내게, 치하야 짱이 이번엔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조금, 쓸쓸해."
"어……."
무슨 얘기였더라. ……맞아, 분명, 내가 치하야 짱네 집에 왔던 이유. 쓸쓸함. 치하야 짱도. 똑같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내 솔직한 마음이야. 하루카와 헤어지는 건, 나도 사실……. 그것만은 믿어줘."
"나 그렇게까지 외로움 안 타는 걸."
"평소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건, 즐겁기도 하지만 꽤 부담이 되는 법이야."
상상해 본다. 모르는 호텔에서 자고, 눈을 떠 보면 모르는 천장. 옆에는 아무도 없다――
문득 저번 달에 치하야 짱과 여행 갔던 때를 떠올린다.
한밤중에 왠지 잠에서 깼는데, 옆에 붙어 있던 이불이 텅 비어 있었다. 옆에 있었을 치하야 짱이,
……그렇다. 그날 밤 치하야 짱은 한동안 자리에 없었다.
내가 어느샌가 잠들어 버렸으니까 할 일이 없어진 치하야 짱이 혼자서 온천이라도 다녀온 거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치하야 짱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해가 뜰락 말락 하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치하야 짱이 어슬렁어슬렁 돌아왔다.
뭘 하고 있던 걸까. 말을 거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아서, 난 자는 척을 한 채로 치하야 짱이 이불에 들어가는 걸 등으로 느끼고 있었다.
옆에 있는데도 왠지 치하야 짱이 무척이나 멀게 느껴졌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하고 다시 의식이 몽롱해질 때까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두번다시 치하야 짱과――
아니, 떠나기 전 날에 떠올릴 만한 일이 아니다. 재수 없게.
"……화장실 써도 돼?"
"그래."
안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생각에서 도망치듯이, 일어서서 치하야 짱에게 등을 돌렸다.
불안한 기분이 빙글 빙글 빙글. 이런 것도 화장실에 흘려 버리자.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치하야 짱이 당황하면서 원래 위치에 다시 앉고 있었다. ……뭘 하고 있던 걸까.
한숨을 쉬고, 그러고 보니 내일 일로 뭔가 연락이 없었는지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가방 속을 뒤져 본다. 생각보다 깊이 묻혀 있었던 핸드폰을 꺼내서 전원을 켜 보니 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이제 슬슬 막차 시간이다.
저쪽에서 지내는 데 필요한 짐은 이미 거의 다 호텔로 보내 두었다. 이제 가져갈 건 이 가방 정도뿐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치하야 짱네 집에서 자고 가도 딱히 아무런 문제도 없단 말이지~. 내일 일단 사무소에 들렀다 공항으로 갈 거고, 묵게 해 주면 정말 고마울 텐데 말이지~.
옆에서 자는 치하야 짱을 한 번 더 보고 나서 가고 싶다. 그러면 이 답답한 기분도, 이번에야말로 개운해질 지도 모른다.
여기서 쓰는 건 오랜만에 그 수단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면서도 조금 일부러인 것처럼 말해 본다.
"아, 아아, 어떡하지, 슬슬 막차다. 있잖아, 혹시 괜찮으면, 치하야 짱――"
"하루카."
치하야 짱이 내 말을 끊었다. 평소와 다른 전개, 평소와 다른 조금 딱딱한 목소리에 오른손을 꼭 쥐었다. 오늘 밤은 늦게까지 안 놀 테니까, 만약 내일 아침 내가 빨리 가게 되면 안 깨우도록 조심할 테니까, 절대로 폐 안 끼칠 테니까, 부탁이야, 치하야 짱, 오늘 밤 만은,
"그건 안 돼."
왜라는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겹쳐진 불온한 이미지가 드디어 형태를 이룬 것 같은, 기분 나쁜 납득.
"아, 역시 내일 바쁘구나. 그래도 나, 정말로 이제 자고 일어나기만 할 거니까. 열쇠도 받았고, "
"벌써 이런 시간이었구나."
치하야 짱이 중얼거렸다. 왜인지 움직일 수가 없다. 방 안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들려오는 건 가을 벌레의 울음소리 뿐.
"있잖아, 하루카. 내가 오늘 널 부른 건, 꼭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야."
"왜, 왜 그래, 치하야 짱. 갑자기 정색하고. 그렇게 말 안 해도 제대로 전해졌는걸? 난 저쪽에서도 잘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치하야 짱이 눈을 살짝 감고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얼굴에 작은 미소를 띠고 다시 나와 시선을 맞춘다.
"비밀 질문 2번이야, 하루카. ……첫사랑 상대는 누구였어?"
"가가가갑자기 무슨 말이야, 치하야 짱!"
다댜다당황하는 날 옆에 두고, 거의 표정을 바꾸지 않는 치하야 짱. 왜 갑자기 뜬금없이 기습적인 주제를!
"없어, 없어, 있었던 적 없다니까! 전에도 그랬잖아, 그 여행간 날 밤에! 맞다, 치하야 짱은――"
어떤데, 라는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어두운 방안에서 둘이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던 그날 밤,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던 내게 치하야 짱은 확실히 말했다.
다음에 얘기할 때 가르쳐 주겠다고.
상대를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진다곤 말할 수 없다. 치하야 짱이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들으면, 몇 살? 뭐 하는 사람이야? 언제 알게 됐어? 그런 의문이 몇 개고 몇 개고 생겨나겠지.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제부터? 어디가 좋은데? 벌써 키스 해봤어? 혹시, 그, 다음도……? 몇 개고, 몇 개고, 몇 개고, 몇 개고. 분명 그 모든 것에 치하야 짱이 대답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듣고 싶은 건지 듣기 싫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꼭 신경이 쓰이고 만다. 점점 상상만 부풀어서, 내가 모르는 치하야 짱이 늘어 간다. 내가 아는 치하야 짱이, 멀어져 간다. 싫다, 역시 듣기 싫다. 그런 것 따위 듣고 싶지 않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잖아.
바뀌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하고 치하야 짱은 계속 친구고.
헤어지는 일도 없고.
서로 중력에 끌려서 빙글빙글 도는, 밤하늘에 뜬 연성처럼. 그래서 난 묻지 않는다. 물어봐 줄까보냐!
필사적으로 대신할 말을 찾는다. 어중간하게 벌린 입 안이 점점 말라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꼭 쥔 손 안에 땀이 배어나왔다.
치하야 짱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미소지은 채, 입을 열었다.
"난 있지――"
"안 물어봤어! 안 물어봤어, 치하야 짱! 알았어, 대답할게. 비밀 질문 1번,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일!"
거의 소리치는 것처럼 한 번에 말했다. 내가 어떻게든 치하야 짱 이야기를 안 들으려는 이유는, 분명 하나 더 있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막연한 불안. 오늘 떠올린 몇 개의 기억의 씨앗이, 연이어서 한 번에 싹틀 것 같은. 상복처럼 짙은 검은색 꽃을 피울 것만 같은. 안 좋은 예감이란 건 무시할 수 없다. 뭔가 작은 일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은 많이 있다.
착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 된다. 치하야 짱의 얘기를 이 이상 계속하게 둘 순 없다.
엄청나게 부끄러우면서도 좀 웃기는 에피소드를, 길 옆 도랑에 빠뜨린 은반지를 찾는 것처럼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려 해 본다. 뭔가, 뭔가, 뭔가. 치하야 짱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시시하게 느껴질 만한, 그런 기억. ――아, 이런 건 어떨까!
겨울 발견한 빛나는 반지를 구깃구깃 손끝으로 눌러서 뭉친다. 그리고 총알 같은 모양으로 바꾼다. 이 필살 부끄러운 이야기로, 치하야 짱을 입 다물게 해 주지.
"있잖아, 나, 얼마 전에――"
상상 속 권총에 총알을 넣는다. 격철을 올리고 잘 조준한다. 한 발로 처리할 수 있도록 미간을 노린다. 변함없이 치하야 짱은 미소를 띤 채였다. 그 눈을 확실히 바라본다. 치하야 짱과 시선이 교차한다.
…………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방아쇠에 걸었던 내 검지가 멈추었다.
다시 한 번, 치하야 짱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 눈은 웃는 것 같으면서도 웃지 않는 것 같았다. 치하야 짱의 미소 속에서, 거기만 무척 이질적이었다.
또다. 또 이 눈이다. 깊고 깊게 맑으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수면에서 본, 밤바다 밑바닥 같은 눈동자. 조용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색을 띠고 있다. 그게 아무런 마음이 담기지 않아서 투명한 것인지, 여러 마음을 뒤섞어서 만들어진 하양인지 검정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지만, 무척 진지한 눈빛이란 건 알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 말고 이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나 따위가 방해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에야말로 어쩔 도리가 없이 말을 잃는다. 이런 치하야 짱에게 대항할 수 있을 만한 것을, 지금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음 말을 기다리던 치하야 짱은 내가 입을 다무는 것을 보고, 다시 그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나도 있지, 얼마 전 일이었어. ……그 사랑을 깨달은 건."
뭐였더라. 전에 얘기했던, 치하야 짱이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
"지금 내겐 소중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이 사무소에 들어오기 전까진 누군가에 대해서 좋아한다는 마음을 품은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걸 오랫동안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맞장구도 쳐 주지 않는 나쁜 청자인 내게, 치하야 짱은 자기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단어를 필사적으로 찾는 것처럼, 아주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랑이란 계속 저 멀리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자기 주변에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게는 그림책 속,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거든. 아이돌로서 사랑을 하는 소녀를 연기해도, 사랑 노래를 불러도. 그건 나이기는 하지만 내가 아니었어."
나도 마찬가지다. 잘 모른다, 사랑, 같은 건. 그래서 노래할 때는, 연기할 때는, 그저 막연히 '좋아한다'는 감정을 잔뜩 담았다. 그게 사랑과 비슷한 것인지, 사랑의 형태를 한 것이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드디어 내가 발견한 내 사랑은 있지, 내가 상상하던 아름답고 고귀한 게 아니었어. 훨씬 더 추하고, 허무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감정이었어. 그래도 그게 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건 말야, 하루카. 넌 날 경멸하겠지만――"
치하야 짱의 눈에 한 순간 슬픈 빛이 잔물결처럼 일었다.
"내게 있어서 사랑은, 내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내가 바랄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어."
치하야 짱은――치하야 짱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치하야 짱이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그럼에도 괴로움이 묻어나는 게 전해지는 목소리로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치하야 짱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 만큼 미워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날 언제나 도와주는데, 곁에 있어 주는데, 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마음을 품고 만 게 비참하고, 부끄럽고, 한심해서."
여행 날 밤에 치하야 짱이 말했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것 중 마지막에 말했던 걸 떠올린다. 어느새인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던 사람.
"같이 보내는 시간 속에서, 내 참견도 많이 하고, 착각할만한 행동도 많이 당했지만."
그건 분명 저번에 얘기했던 거다. 혹시 치하야 짱이 좋아하는 사람, 프로듀서님일까. 사무소 친구들 모두한테 상냥하고. 멍하니 납득한다. 하지만 따끔, 하고. 양초 위에서 흔들리는 불꽃에 실수로 손가락을 대고 만 것처럼, 작은 뜨거움과――아픔.
"덜렁대고 불안불안하게 생각될 때도 있지만."
치하야 짱은 그 날 밤에 내 옆에서 했던 말을 돌이키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 얘기를 계속한다. 정말, 프로듀서님하고 있었던 염장 지르는 얘기는 얼마든지 들어 줄 테니까, 좀 더 행복하게 얘기해, 치하야 짱. 또, 따끔, 하고. ……어라, 하지만 이상하다. 확실히 프로듀서님은 처음엔 믿음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듬직하고 수완 좋은 프로듀서님이다. 불안불안하거나 그렇지 않다.
맞아, 치하야 짱이 제일 처음에 꼽았던,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래도 좋아해.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좋아해. 설령 누군가에게――네게, 잘못됐단 말을 들을 지라도. 내게 보여 주는 미소를 정말 좋아했어."
각오를 굳힌다. 다음 말에서 누구 이름이 나오더라도, 난 치하야 짱을――
"좋아해, 하루카."
"――――어?"
속삭이듯이 나온 말에, 전신이 굳었다. 들은 이름에, 사고가 멈춘다.
좋아한다. 치하야 짱이, 나를. 내가, 치하야 짱을.
"내 첫사랑은 너였어. 여름이 시작될 때 쯤 깨닫고 나서, 아니, 분명 그보다 훨씬 더 전부터, 널 좋아했어."
사랑? 치하야 짱이, 나를? 내가, 치하야 짱을?
사랑, 이란 게 뭐더라. 방금 치하야 짱한테 들은 참인데, 모르겠다. 아, 그렇구나. 들었을 때부터, 잘 몰랐었구나.
농담, 일까. 치하야 짱의 눈을 다시 한 번, 잘 보면 알게 될까.
"미안해, 갑자기 이런 말 해서. 곤란하지. 미국으로 가기 직전에 할 말이 아니었지. 하지만 오늘 말하기로 하고 나서, 그래도 오늘이 되고 나서도 말하는 걸 계속 망설였는데. ……내 멋대로 구는 건, 이게 마지막이니까."
응, 곤란해, 치하야 짱. 역시 모르겠어. 마지막이란 건 마지막이란 뜻이지? 마지막이 무슨 뜻이었더라?
멍한 사고를 어떻게든 되돌려서 치하야 짱의 눈을 들여다본다.
"난 네 친구로는 어울리지 않았어. 이 마음은 널 행복하게 만들 수 없으니까. 날 싫어해도 돼, 두 번 다시, 널 상처 입히지도 않을 테니까――"
치하야 짱은 말했다. 치하야 짱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바랄 수가 없는 거라고.
치하야 짱은 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치하야 짱에게 있어서 난,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 만큼, 싫, 다는……?
치하야 짱의 눈동자 속. 거기에서 발견한, 숨겨져 있던 치하야 짱의 마음은,
"하루카. 지금까지 고마웠어. 네가 돌아와도 가능한 한 안 만나도록 할게. 여기서, 헤어지자."
체념.
드디어 발견한 치하야 짱의 마음이, 더욱 날 당황하게 했다.
"치하야 짱, 왜, 어째서, 그런 말――"
"난 널 만나서 정말로 행복했어. 이번엔 내가 네 행복을 빌 수 있게 해 줘. 넌 네 행복을 손에 넣도록 해."
몸속에서 폭주할 것 같은 슬픔에 떠밀려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 슬픔이 어디에서, 무엇에서 나온 것인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무슨,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어! 치하야 짱은 이제 날 안 좋아해? 싫어진 거야? 난 치하야 짱의 뭐야!?"
"친구조차, 아니야."
그 말이 결국은 나를 모조리 으깨 버렸다.
아까 문을 사이에 두고 치하야 짱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게 싫으면 내 제일 소중한 친구가 아니게 되는 방법밖에 없다구!』
치하야 짱 안에서 내 존재는, 결국 방해가 되고 만, 걸까.
다리가 풀릴 것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참고,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를 어떻게든 유지해서, 치하야 짱을 내려다본다. 미소지은 채 날 올려다보는 치하야 짱의 눈 속에는 역시 체념의 그림자밖에 비치지 않았다.
치하야 짱은 내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친구인 것조차.
하지만 치하야 짱은 날 좋아한다고 했다. 좋아한다고 해 줬다. 나도, 나도 좋아한다고 전하면 무언가가 바뀔 지도 모른다.
"치하야 짱, 난, 나도――"
눈물이 한 방울 볼을 타고 떨어진다. 금방 반대편 눈에서도. 왜.
어째서. 내 입에서, 좋아한다는 단 한 마디가 나오지 않는다――
"어, 라……? 이상, 해. 이런, 건――"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입이 뻐끔뻐끔 움직일 뿐, 필요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꼴 사납고.
그저 괴로웠다. 치하야 짱에게 체념의 눈빛을 받는 지금 상황이.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윽!!"
테이블 반대편에 두었던 내 짐을 손에 든다. 테이블을 돌 때 발이 부딪혀서 사과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것에 시선을 주지도 않고, 치하야 짱을 돌아보지도 않고, 단번이 복도를 달렸다.
손잡이를 쥐고 몇 초간 멈춘다. 부탁이야, 쫓아와 줘. 헤어지기 싫다고, 말해 줘.
그런 남한테 떠넘긴 거미줄 같은 덧없는 바람 또한,
"잘 가, 하루카."
치하야 짱의 마지막 말로 산산이 부서졌다.
………
……
…
쏴아, 비가 내리고 있다. 그 속을 그저 달리고 있다. 가끔 무릎에 손을 짚고 거친 숨을 고르지만,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은 없다. 다시 달려 나간다.
언제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을까. 그런 건 모른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치하야 짱네 집을 뛰쳐나오고 나서, 몇 번 모르겠다고 되풀이하고 있는 걸까. 눈은 흐르는 눈물로 엉망이고, 거기에 비까지 섞여서 제대로 역으로 가고 있는 건지조차 잘 알 수 없었다.
왜, 어째서, 이렇게 돼 버렸을까.
치하야 짱이 날 찢어놓는 말을 해서? 아니면 내가 그걸 은 탄환으로 멈추지 못해서? 아니면 프로듀서님이 내가 할리우드에 가게 된 걸 말한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방아쇠가 당겨져 있었던 걸까.
치하야 짱이 잘못한 건지, 내가 잘못된 건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건지. 어떤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고, 전부 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는 데에 의미는 없고, 무엇을 후회하더라도 이젠 의미가 없다.
멀어지는 건 물리적인 거리뿐이라고 생각했다. 새해가 밝으면 다녀왔다고 말하고, 어서 오란 말을 듣고, 또 치하야 짱과 함께.
정신을 차려 보니, 옆에 치하야 짱은 없다. 이젠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다.
서로 떨어져서.
정신을 차려 보니, 이렇게 돼 있었다. 놀랐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난 어느새인가 넘어져서 엎어져 있었던 것 같다. 막 생긴 물웅덩이가 안 그래도 축축한 내 옷을, 마지막 일격을 가하듯이 적셔 간다. 일어나려고 땅에 손을 짚으려고 해도, 가장 소중한 사람 하나 잡지 못한 무력한 손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바닥에 누운 내 몸을 비가 때렸다.
절망적으로 엉망이다.
눈물인지 비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흐르는 물방울이 물웅덩이에 계속 떨어진다. ……이제 충분하잖아.
내 죄는 이런 꼴을 당할 정도로 업이 깊은 것이었을까. 생각하는 것에서 도망쳐 온 벌인가.
난 뭘 하고 싶었더라.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어떤 치하야 짱과 '함께'를 바랐던 걸까.
생각하려고 해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만 생각한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 언니는 비 안 온다고 했었는데. 또, 거짓말이었구나.
이제 언니는 몇 번 틀려도 좋으니까, 치하야 짱도, 딱 하나만 거짓말이라고 해 줘.
친구조차 아니란 건, 거짓말이었다고. 평소처럼 웃어줘. 나 화 안 낼 테니까. 아니, 조금은 화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금방 나도, 뭐야 정말, 하고 웃을 테니까. 그리고 화해하고, 전부 원래대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다시 한 번――
눈물은 언제 멈추는 걸까.
슬프지 않게 되면? 그건 무리다.
몸 안의 수분이 없어지면? 적어도 비가 그칠 때까진 무리란 게 돼 버린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영원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다.
누구도 나를 찾아 주지 않는다. 날 쫓아올 사람도 없다.
할로윈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물이 이 세상에 찾아오는 날일 텐데. 마물조차, 내 영혼을 빼앗으러 오지 않는다. 그야 그렇겠구나. 나, 제대로 변장하고 있으니까. '아이돌'인 아마미 하루카도, '아마미 하루카'인 아마미 하루카도. 난 늘 잘 해 왔으니까.
뭔가, 지쳐버렸다.
난 뭐더라.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그걸 발견해 줄 친구는, 이젠 가깝고도 먼, 이미 친구조차 아닌지도 모른다.
애초에 치하야 짱과 헤어지고 싶어서 아이돌을 해 왔던 게 아닌데. ……아아, 그랬구나.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내게 있어서 치하야 짱은, 이렇게나――
시끌벅적한 축제가 열리는 밤도, 끝나고 나면 추억과 정적 밖에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미 늦고 만 밤,
난 어디까지나 혼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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