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물/번역

[아이마스SS]0과 0 사이, 혹은 원점

카와즈 2015. 10. 2. 11:50

에필로그. 일단 이걸로 기나긴 시리즈는 막을 내립니다.

사실 한 편이 더 있다지만 작가님께서 바쁘신지 아직 업로드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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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원작자의 허가를 받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881057


그것은, 맨발 그대로의 사랑이었습니다.

(それは、裸足のままの恋でした)

11. 0과 0 사이, 혹은 원점


※이 소설에서는 이름 뒤에 붙는 모든 호칭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링크]를 참조하세요.



 넓은 창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이, 고급스런 수트를 입고 마찬가지로 고급스런 의자에 앉은 남자의 등을 붉게 물들였다.

 그가 짜증나는 것처럼 양 손으로 가지고 놀고 있는 건 트럼프 다발이다. 둘로 나눈 그것을 책상에 눌러 굽혀, 엄지손가락으로 튕기듯이 셔플. 플라스틱제 트럼프가 쓸려서 겹쳐지는 가벼운 소리가, 혼자 있기엔 넓은 공간――대형 예능 사무소 961프로덕션 사장실에 작고 작은 진동을 만들었다.

 생각에 잠긴 남자 귀는 그 소리를 안 듣고 있다. 책상 표면을 무력하게 두드릴 뿐인, 들을 필요도 없는 공기의 흔들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군."

 방의 주인, 쿠로이 타카오는 언짢은 듯이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물론 트럼프가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숙적의 얼굴.

 "타카기 자식, 또 요즘 잘 나가는 것 같더만. 며칠 전엔 아마미 하루카와 미키 짜――호시이 미키도, 할리우드에서 돌아왔다고 하고. 분하지만 영화 촬영은 무사히 크랭크업을 맞이했다고 봐야 하겠지."

 끝을 모르고 점점 성장해 가는 짜증나는 사무소 소속 얼굴들이, 쿠로이를 비웃듯이 머릿속에서 히죽이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녀들은 늘 웃고만 있었다. 예능계를 얕보고라도 있는 건가.

 손 안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면서 트럼프가 다시 한 뭉치가 되어 가지만, 그런 걸로 쿠로이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정말로 짜증나기 이를 데 없다. 오랜만에 뭔가 방해 공작이라도 할까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주피터라는 우수한 말을 내보냈기 때문이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게도 지금 쿠로이 손에 765프로를 상대할 만한 아이돌은 없다. 어쩔 수 없이 쓸 수 있는 수는 한정적이다.

 "젠장."

 신사답지 않은 말을 뱉으면서 뒤집혀 있던 트럼프 다발로 책상을 쳤을 때였다.

 내선 착신음이 사장실에 울린다.

 "――나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사장님과 얘기를 하고 싶다는 분이 계십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내게 면회 예정은 없다.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접수 여성의 목소리에 지긋지긋해하면서 수화기를 되돌려 놓으려다, 문득 생각한다.

 "……잠깐. 일단 그 녀석의 요건만 듣지."

 "네. 『765프로 아이돌의 재밌는 사진이 찍혔습니다. 나리한테도 나쁜 얘기가 아닐 걸요.』――라고 합니다."

 "마음이 바뀌었다. 들여보내."

 이번엔 수화기를 원래 자리에 놓고, 쿠로이는 내심 싱글벙글했다. 역시 감은 틀리지 않았다.

 트럼프 산에 한 손을 올리고 옆으로 밀어서 부채꼴로 편다. 그 중에서 적당히 다섯 장 카드를 뽑아, 한 번에 전부 뒤집었다.

 나타난 건 전부 조커.

 "큭큭큭…………. 하핫핫핫!! 이번에야말로 네 아이돌들을 밟아 주마, 타카기!"

 못된 웃음을 지으면서 가십 기자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쿠로이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자, 그럼, 일요일 밤의 골든! 오랜만에 765 전원이 모였어요! 생방임까~~~~"

『레볼루션!!』

 하루카의 오프닝 멘트에 맞춰서 오른손을 번쩍 든다. 방청자들도 포함해서 스튜디오가 하나가 된다. 이전엔 버라이어티 방송이라고 싫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카메라에서 시선을 돌려서, 옆에 앉은 하루카와 미키를 본다. 매주 편안한 이 공간에 둘이 있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그녀들이 돌아왔단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갑작스럽지만, 신 코너부터. 타이틀은, '너희들, 그건 라디오에서 해!'예요!"

 촬영이나 음향 스태프의 표정까지 풀어지게 만드는 웃음을 뿌리면서, 하루카가 오른손을 크게 돌려서 등 뒤의 모니터를 가리켰다. 거기에 나온 코너 명을 슬쩍 보고, 미키가 작게 하품을 했다.

 "아후. 잘 모르겠는데 이 코너는 뭐야?"

 "미키, 대본은 잘 읽어 두자구……."

 미키의 페이스에 휩쓸리기 시작해서 당황하는 하루카 대신에, 내가 첫 코너를 이어받게 됐다.

 "음, 둘이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왔으니까, 저쪽에 있던 동안에 쌓인 이야기도 있을 거 아냐. 그래서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바탕으로 평범한 토크를 한대."

 "아, 고마워, 치하야 짱. 분명 그거면, 굳이 TV에서 할 필요는 없긴 하네."

 "뭐, 이번엔 이렇게 셋이 모인 기념편이니까, 가끔은 좋지 않을까. ……다시 한 번, 하루카, 미키, 어서 와."

 나를 따라서, 관객석에서도 "어서 와~!"하는 따뜻한 성원이 나왔다. 미키는 "고마워~."하고 싱긋 웃었고, 하루카는 부끄러운 뜻이 목 뒤를 긁었다.

 "그럼 두 사람에 대한 질문이 주로 나올 테니까, 내가 읽을게. 첫 사연은……생방임까 네임 '리틀 매치 보이'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미키 상, 치하야 상, 하루카 상,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 분을 다시 생방임까에서 보게 돼서 기쁩니다. 영화 예고편도 봤는데, 특히 미키 상이 연기하는 에리가 너무 귀여워서 넋을 잃고 봤습니다. 어떻게 그런 귀여운 표현을 할 수 있는 건가요?』……래."

 "으음, 미키가 원래부터 귀여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네, 그럼 다음 사연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어, 잠깐만. 이 코너, 그렇게 막 진행해도 되는 거야!? 좀 더 얘기하고 해야 하지 않아?"

 "생방임까 네임 '납빛 청춘'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하루카 짱, 미키 짱, 치하야 짱, 생방임까~?』"

 "생방임다~."

 "『영화 촬영 수고 많으셨습니다! 할리우드쯤 되면 규모도 크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뒷이야기 같은 게 있으면 들려주세요! 하루카 상, 뭔가 없나요?』래."

 "으음, 뒷이야기라. 분명 여러 가지 있었지, 미키?"

 "그랬지. 아니, 큰일이었던 건 촬영 자체보다도 성가신 하루카 때문이었어. 전혀 연기에 집중하지도 않고, 멍하니 있고. 그 뿐인 줄 알았더니, 치하――"

 "그만 그만 그만! 그거 털어놓으면 안 되는 얘기지!? 치하야 짱, 다음!"

 "괜찮아? 아직 아무것도 대답 안 한 것 같은데."

 "막 진행하자, 그러자."

 "알았어. 그럼 세 번째 사연은, 생방임까 네임 '사석에서 이오링에게 밟히고 싶어'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욕망을 숨김없이 흘려버리는구나."

 "『오랜만에 평소의 세 명이 메인 퍼스널리티인데요, 요 3개월 정도 치 짱은 외롭지 않았나요?』……어리석은 질문이네.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그, 그렇지~"

 "그래? 둘이서 사회할 때, 가끔 치하야 상이 멍하니 있었다고 유키호가 그랬어."

 "그, 그건……아마, 좀 지쳐서 그랬을 거야."

 "그리고 히비키는, '머나먼(하루카나)'이란 단어가 나왔을 뿐인데 어깨를 들썩였다고 그랬어. 하루카 때문에?"

 머릿속에 경보가 울린다. 하루카는 히죽히죽 웃고만 있다. 남 얘기도 아니잖아.

 "다음으로 가자, 다음."

 당황을 감추면서 대본을 봤을 때였다.

 "응? 뭐야~? 추가? 이거 읽으면 돼?"

 하루카를 낀 반대편, 미키가 스태프에게 뭔지 모를 종이를 한 장 받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치하야 상, 먼저 이것 좀 읽을게~. 생방임까 네임 '쎅찌 쌍둥이의 언니'……이게 뭐야, 읽기 힘들어!"

 "하루카, 지금 당장 미키한테서 그걸 뺏어!"

 "어? 어어?"

 "으음, 의역하면, 『하루룽이 지금 앉은 자리, 한 가운데가 아니라 미묘하게 미키미키보다 치하야 언니한테 가깝지 않아?』인가?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일까. 다음으로 넘어가자."

 "아~, 알겠다! 하루카, 온에어 중에도 조금이라도 치하야 상 옆에 있고 싶어서 그러지!"

 "어? 별로 난…………어라? 정말로 의자 위치가 표시된 데에서 꽤 떨어져 있어! 왜!?"

 당황하면서 급하게 의자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려고 하다가.

 그 동작을, 거의 앉은 그대로 하려고 했던 게 잘못이었다.

 갓샹!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하루카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하루카!"

 "몰랐는데, 하루카가 미키하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니 말야."

 "그럴……생각은……. 난 미키도 좋아해……."

 쓰러진 채로 하루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테이블 뒤에 있어서, 지금 TV엔 유감스럽게도 그 모습이 비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이거대로 왠지 재밌다.

 "그래. 하루카는 그렇게 날 좋아했구나."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상처받았어."

 "아, 그러니까, 엄청 좋아하는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벌떡 일어난 하루카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다시 테이블 밑으로 가라앉았다. 미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재밌어 보이네, 하루카."

 "왠지 코너 취지가 바뀐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나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미키는 왠지 삐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코너 이름부터 바꿔야겠어. '너희들, 그건 집에서 해!!'그런 느낌으로."

 "자, 자 자~! 그럼 다음 코너로 갈게요! 이어서, '히비키 챌린지'!"

 부활한 하루카가 소리치지 영상이 바뀌었다. 평소였으면 스튜디오 쪽은 조금 이완된 분위기였을 텐데, 미키 얼굴은 뾰로퉁한 그대로였다.

 "하루카."

 "응?"

 "치하야 상도."

 "왜?"

 "둘 다 닭살 떠는 건 자유지만, 미키를 따돌리는 건 너무해."

 "그러니까 있지, 의자는 내가 한 게 아니라……."

 "맞아, 이번 건 하루카가 잘못했어."

 "치하야 짱까지 너무해!?"

 "그건 일단 두고, 물론 미키랑도 다시 이렇게 방송 찍을 수 있어서 난 기뻐."

 "그럼 됐지만. 미키도 좀 심하게 놀렸다고 생각해."

 "좀 봐줘……."

 테이블에 엎어지는 하루카를 보면서, 미키가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간만에 세 명이서 하는 생방임까 수록. 물론 요 3개월, 누구와 사회를 하든 재밌었지만.

 다시 한 번 돌아왔다는 실감이 든다.

 바로 며칠 전, 미키보다 이틀 늦게 귀국한 하루카를 공항으로 마중 갔을 때를 떠올린다.













 맞아, 하루카 의자를 내 쪽으로 옮겼던 건, 물론 나야.

 하루카 가까이 있고 싶어서, 라기보단 조금이라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그랬는데,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겠지.



………

……





 "치하야 짱!"

 그리운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녀가 크리스마스에 다시 할리우드로 가고 나서는 거의 매일 전화를 했으니까. 하지만 스피커 너머가 아닌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깨끗해서, 같은 장소에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쪽에만 하고 있던 이어폰을 빼면서 불편하지 않은 공항 로비 의자에서 일어섰다. 저편에서 인파를 헤치고 곧장 달려오는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서 흔들리는 두개의 리본.

 "하루카."

 입에 담은 말이 그녀에게 전해지기까지, 이제 1초조차 걸리지 않는다. 그 뿐인가, 그 거리가 점점 좁혀지다가 강한 충격과 함께 0이 되었다.

 살짝 넘어질 뻔 했지만 정말로 넘어지진 않았다. 하루카가 뛰어들면서 양 팔을 등에 감아서, 떨어지는 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하루카, 좀 힘들어."

 기브 업이란 것처럼 하루카 등을 두세 번 두드려도,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좀 있지,"

 "……10퍼센트."

 "뭐가?"

 "치하야 짱 에너지."

 "뭐야, 그게."

 "꽉 찰 때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로봇처럼 말하는 하루카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 자세론 그녀가 볼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일단 좀 놔 줘."

 "에너지가 꽉 찰 때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건 아까 들었어. 어떻게 하면 충전되는데?"

 기가 막혀서 물어보자, 하루카는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날 올려다보고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입을 기묘한 모양으로 오므리고는,

 "츄~."

 이상한 목소리로 울었다.

 "뭐?"

 "……자, 잔뜩 먹자."

 "이상하게 얼버무리려고 하지 마."

 "치하야 짱이 잘못한 거야! 안 들린 거야, 뭐야? 싫어서 그래!?"

 "잘 안 들렸단 말야. 다시 한 번 말해줘."

 "……………………츄~."

 "하루카는 햄조의 울음소리도 낼 수 있게 됐구나."

 "그렇긴 한데 아니야!"

 "농담이야. 일단은 전해졌어."

 "그럼 빨리! 컴온!"

 "하지만 안 돼."

 "어째서!!"

 10퍼센트인 하루카가 갑자기 물러나서, 원망스럽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데서 키스라니, 말도 안 돼.

 "하루카와 처음 하는 키스는, 완벽한 시추에이션과 그에 맞는 장소에서 할 거라고 마음속으로 정했는걸."

 "아,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란 상식적인 판단이 아니었구나."

 필사적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려고 하지만 뺨이 물드는 걸 감추지 못하는 하루카도 귀엽다.

 "그보다도 하루카가 상식을 벗어난 거 아냐? 여긴 일본이야. 좀 오랜만에 만났다고 키스를 해 달라니, 미국 물이 심하게 들었어."

 "응, 태클을 건다면 거기부터지. 뭐어, 월드 와이드한 지금 하루카 상에겐, 키스 같은 건 그냥 인사에요, 인사."

 "……설마."

 "응?"

 "다른 사람하고 하진 않았겠지?"

 "아, 잠깐, 무서워, 안 했어 물론."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을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정말로?"

 "진짜라니까! 입술은 노 터치, 노 프라블럼! ……그야 미국이니까 뺨에 가볍게 하는 건,"

 "있었어?"

 "있었던가~ 어땠더라~"

 "하루카, 하나 말해 두겠는데."

 "네."

 "일본에서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하면――"

 "알고 있어요! 전 치하야 짱만의 거에요!"

 "좋아."

 "있잖아, 전에도 생각했는데, 혹시 치하야 짱, 질투심 깊어?"

 "……글쎄."

 질투. 어떨까.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족 말고는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없었고, 그 사람이 손을 뻗으면 만지는 걸 허락해 주고, 하지만 언젠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싫다.

 하루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믿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 붓 끝에서 떨어진 먹물처럼 무언가 새까만 것이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비좁고 추한 내 '사랑'에는, 왠지 그게 잘 와 닿았다. 느끼고 말았다.

 어느샌가 내려가 있던 시선을 조금 되돌려서, 그래도 낮은 시선인 채로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하루카는, 싫어?"

 "으음, 어떨까. 정도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지만, 좀 기쁠지도."

 "기뻐? 왜?"

 "……비밀."

 어이없어하는 내 눈 앞에서, 하루카는 왠지 간지럽다는 듯이 웃었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하루카는 그것도 포함해서 날 용서해 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받아들여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는데. 어떨까.

 그런 하루카는 어느새 웃음을 집어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삼스럽지만, 치하야 짱만 왔어?"

 "나만으론 부족해?"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건 그거대로 좋은데, 전엔 다른 애들 때문에 여러 가지가 엉망이 됐으니까, 뭔가 의표를 찔렸다고 할까."

 "미키 때는 시간이 빈 애들이랑 다 같이 마중 갔었는데. 프로듀서가, "이번엔 방해꾼들은 들어가 있을 테니까 치하야 혼자 다녀오지 않을래?"라고 그래서."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하루카는? 미국에서 돌아오는 것 치고는 짐이 작은데."

 "갈 때랑 똑같이, 거의 다 집에 직접 보내 버렸어. ……참고로, 하룻밤 묵을 짐은 있는데. 이 다음 치하야 짱 일정은?"

 "오후는 오랜만에 완전히 오프야."

 "그렇구나, 그럼,"

 "응."

 "그 전에 사무소 들러도 돼?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녀왔다고 하고 싶어. 기념품도 두고 싶고."

 "당연히 괜찮지. ……그 가방, 내가 들게."

 "고마워~. 그럼 난 자유로워진 손으로 치하야 짱의 손을 들어 줄게."

 "……정말이지."

 "아~, 에너지, 30퍼센트."

 나란히 걸으면서, 옆에서 망가진 로봇 같은 소리를 내는 하루카를 보고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나도.

 급속도로 망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만나게 돼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장대비처럼 마음속에 차올라서, 물이 불어나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이 얇은 벽이 무너진다면, 난, 우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맞잡은 손만으로 자신은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으니,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단지 우리들이 이 날 사무소에 들렀다가 어디로 갔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





 그날 사무소를 나온 뒤에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그날과 마찬가지로 하루카와 나란히 걷는다. 오랜만에 셋이서 사회를 맡은 생방임까 수록에서 몇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공항에서 있었던 일로부터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 더 추워진 듯한 느낌이 드는 1월 말의 밤.지금 우산을 계속 두드리는 비가 눈으로 바뀌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우헤에~. 춥다아. 하지만 어차피 내릴 거면, 비 보다 눈이 좋은데."

 옆에 있는 하루카도 똑같은 생각을, 하지만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려서 다시 바깥의 찬 공기를 쐰 하루카 코끝이, 어느샌가 발그레해져 있었다.

 "그래? 비든 눈이든 별로 차이는 없잖아."

 "모르고 있구나, 치하야 짱. 재미가 달라."

 "말씀대로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

 "비가 내려도 눈사람은 못 만들잖아."

 어린애 같은 말을 하는 하루카는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기가 내쉰 하얀 숨이 왠지 재미있어서, 추위로 얼어붙은 뺨의 근육이 조금 풀어진 걸 느꼈다.

 "어차피 이 정도 비가 눈이 돼도 쌓이진 않을 거야."

 "그치만 있지, 가랑비라도 우산은 쓰지만 가루눈 정도면 우산 없이 나가고 싶어지지 않아?"

 "안 그래. 비든 눈이든 결국 젖어 버리잖아."

 "전혀 달라. 옷에 눈이 살짝 살짝 쌓이는 뭐라 할 수 없는 기쁨을 가르쳐 줄 테니까, 다음에 눈이 내리면 우산은 몰수할 거야."

 "좀 봐 줬으면 좋겠는데."

 입으론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내심 조금 기대되는 자신을 깨닫고, 또 조금 뺨이 풀어졌다. 비든 눈이든 상관없지만 하루카가 있다면 그거면 됐다. 빨리 눈이 와 주지 않을까.

 "하지만 하루카, 보통 눈이 더 곤란하지 않아?"

 "왜?"

 "일단 사회인으로서 자각은 가지는 게 어때……. 쌓이면 교통기관이 멈추잖아. 일하러 못 가게 돼."

 "아~. 확실히 우리들한텐 꽤 곤란하겠다. 하지만 예들 들어서 오늘 밤이면 별로 문제없지 않아? 치하야 짱네 집이면 어디든 별로 안 멀고,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오늘 밤 자고 가도 된다고 안 그랬는데."

 "어라, 하루카 상, 막차로 쫓겨나는 거야?"

 "안 돌려보낼 거야."

 "……흐응."

 하루카가 고개를 숙였다. 숨기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지만, 입가가 헤벌쭉해져서 기분 나쁘다.

 일본에 돌아온 날도 당연하다는 듯이 하루카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갔다. 입고 있던 옷을 또 당연하다는 듯이 세탁기에 던져 넣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 버려서, 결국 내가 말리고 개서 장롱 빈 곳에 넣어 두게 됐다. 앞으로도 하루카 물건이 지극히 당연하단 듯이 우리 집에 늘어갈 것 같은데……그건 그거대로, 상관없을까. 하루카에게 집 열쇠를 준 지 이제 곧 계절이 한 바퀴 돌 즈음이다. 이제 와서 뭘. 내가 그다지 물건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나 혼자서 살기는 너무 넓은 지금 집. 물론 모씨를 위해서 얻은 집은 아니지만, 지금 와선 하루카에게 내 공간을 침식당하는 게 기쁘다고 할지, 그게 당연하게 느껴진다고 할지, 어딘가 만족되어가는 충실감을 느낀다고 할지――그만두자.

 뭐라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분하다. 인정하는 게 아니꼽다.

 그렇지만 역시, 이 이상 점유될 리 없을 거라고 늘 생각했던 내 안팎의 하루카를 위한 리소스가, 계속해서 덮어쓰기 되면서 계속 팽창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낯간지러워서――

 난 모씨와 똑같은 칠칠치 못한 표정이 되지 않도록, 교대로 내밀고 있는 내 발에 시선과 의식을 집중했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가끔 한쪽 발이 작은 웅덩이를 밟는다. 거의 같은 간격으로 옆에서도 발소리가 끊이지 않고 겹쳐져 들려온다. 하루카가 옆에 있다. 내 옆에서 아주 조금 앞을 걷는 하루카의 갈색 신발을 눈을 감아서 시야 밖으로 밀어낸다고, 해도 하루카가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귀까지 막는다고 해도, 하루카의 머리에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로 그녀가 거기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비가 오고 있으니 무리일까. ……한번 해 보자.

 난 모든 신경을 코에 집중시키고 숨을 참――

 으려고 했을 때.

 어라.

 하루카가 옆에 있다. 그건 됐다,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왜 하루카가 옆에 있는데도 혼자서 빙빙 맴도는 생각을 하고, 자기 신발 같은 걸 바라보고, 결국에는 냄새를 맡으려고 하고 있는 걸까.

 하루카가 옆에 있는데. 대화로든 뭐로든 그녀와 의식을 공유하고, 꽃과 같은 그녀의 웃음을 시야 한가득 피워서 사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 코 같은 건 일단 아무래도 상관없다.

 퍼스트 스텝. 시선을 하루카에게 향해 본다. 추워서인지, 어느샌가 코 끝 뿐만 아니라 뺨까지 뜨거워 보일 정도로 빨개진 채로 입을 꼭 다물고 있다. 그렇다,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수다쟁이 하루카가 이야기꽃을 피우질 않는다. 그래서 이런 침묵이. 내가 혼자서 우스운 일을 하게 됐다는 말이다.

 왜 이렇게 됐지. 왜 이렇게 된 거지.

 마지막에 어디서 대화가 끊겼더라. 가까운 기억을 되돌려 본다.



『어라, 하루카 상, 막차로 쫓겨나는 거야?』

『안 돌려보낼 거야.』

『……흐응.』



 재생 완료.

 분석 처리.

 이끌어 낸 결론은…….

 "아앗!?"

 "왜 무슨 일이야 치하야 짱!?"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놀랐는지, 하루카가 어깨를 움찔하면서 이쪽을 봤다. 하루카의 우산이 흔들리면서 내 우산과 부딪혀서 물방울을 튀겼다. 하마터면 젖을 뻔 했다.

 "저기 있지, 하루카……. 그런 건, 우리들한텐 아직 이르단? 생각이 드는데?"

 "무슨 말이야, 정말로."

 치켜뜬 하루카의 눈에선 얼버무리는 건지, 정말로 짐작이 안 가는 건지를 읽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좀 해 봐.

 지금 우리들은, 그, 연인 사이고.

 그런 우리들에게 지금부터, 자고 가는 이벤트가, 있을 거고.

 ……또 하나. 떠올려 보자.

 조금 전에 하루카는 눈 눈 시끄럽게 굴었다. 연상되는 건 하얀 색.

 그리고 하루카의 상징, 꽃과 같은 웃음.

 1개월 쯤 전이었을까. TV에서 봤던 것 같다. 하얀 아네모네의 꽃말. 그건 '희망', 그리고……'기대'.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해도 난 방법이나 뭘 어떡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좀 진정해 주세요, 치하야 짱 상!?

 그래, 진정하자. 그러고 보면 조금 전까지 하루카는 하얗다기 보단 새빨갰다. 분명 빨간 아네모네의 꽃말은――

 "난 하루카한테 사랑받고 마는구나……."

 "저, 지금 치하야 짱의 머릿속 회로가 어떻게 된 건지 엄청 알고 싶은데요."

 "그건 안 돼."

 "역시 정정. 들어도 이해 못할 것 같고 뱀이 나올 것 같으니까 그만둘래."

 "하루카."

 "응?"

 "좀 진정하자."

 "아까 그러자고 했잖아!?"

 어이없어하면서 놀란다는 신기한 일을 해내는 하루카한테서 시선을 돌리고 앞을 본다.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는 빨간 신호가 우리들 발을 멈추었다.

 확실히 오늘 난, 초조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뭐에 대해서일까.

 지나가는 차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고, 하루카는 생각에 잠기는 내 옆얼굴을 신기하단 듯이 바라본다. 그렇다, 이렇게 하루카는 옆에 있다.

 그거면 됐을 텐데.

 하루카와는 바로 며칠 전에 같이 잤었다. 이제 와서 당황하고 긴장하고 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평소와 같이. 그거면 됐을 거다.

 ……된 걸까.

 연인이란 이런 게 맞는 걸까.

 조금 생각하고, 이거란 걸 깨달았다. 위화감의 정체는.

 난 하루카의 좋은 연인이 되어 있는 걸까.

 "있지, 하루카."

 하루카의 눈을 똑바로 본다.

 "우리들, 좀 너무 건전한 거 아닐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 좀 알 것 같아."

 그렇구나, 아까부터 치하야 짱은, 중얼중얼.

 하루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은, 우산이 부딪힐 만큼 가까이 있는 내 귀까지 닿지 않았다.

 하루카와 지금의 관계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잤던 날 밤. 간단한 식사와 샤워란 최소한의 동작만 끝낸 하루카는,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장시간 비행을 마친 직후고, 그야 많이 지쳤겠지. 바로 자라고 하자 하루카는 고개를 떨구듯이 끄덕이고 "시차 보케나스~"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어기적어기적 침대에 기어들어갔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들려온 잠꼬대는 "나스시루 축축해~". 그 행복하게 자는 얼굴에 입을 맞추고 싶어지는 충동과 필사적으로 싸우고서 승리한, 아직 머리도 다 마르지 않은 나.

 그렇다, 우리들이 연인이란 관계가 되고 1개월은 지났는데, 우리들은 아직 키스조차 한 적이 없다.

 물론 마땅한 때에 마땅한 장소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 잘 때 덮친다는 짓도 안 했는데. 입술은.

 어떤 걸까. 이건 일반적인 세간에서 볼 때 늦는 편일까. 아니면 아직 이른, 걸까. 요 1개월은 거의 계속 초원거리 연애였고, 게다가 우리들은 둘 다 여자니까 만약 일반적인 척도를 안다고 해도 같은 잣대로 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마음이 서로 통했던 크리스마스 이브 밤, 분명 키스를 할 뻔 했다. 공항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하루카는 나를 원해 주었다.

 실제로는 어떨까. 지금 하루카는 나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 걸까. 뭘 원하고 있는 걸까.

 하루카가 바라는 연인인 '치하야 짱'은 어떤 걸까.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 된 이 관계 이상을 바랄 것도 없다. 하루카와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 됐으면 된 대로 골 테이프를 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걸로 겨우 스타트 라인에 서게 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성의 거리가 제로가 된 셈인데 이 이상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난 이 이상 가까워지려고 하는 걸까.

 정말 억지를 쓰게 됐구나 하고, 어이없음 반 경멸 반인 하얀 한숨을 쉬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얍삽함 안에서 작지만 억누를 수 없는 기쁨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조금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내게 정이 떨어지려는 그 옆에서, 하루카는 하루카대로 뭔가 생각에 잠겨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유난히 긴 신호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한 번 신호가 바뀐 걸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나아가려고 해도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방해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지금 하루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른다. 물어보는 것도 왠지 꺼려지고, 분명 물어봐도 하루카는 대답해 주지 않을 거란 묘한 확신이 있다.

 대신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지금'과 '앞으로'에 대한, 불안인지 기대인지 나도 잘 모르는 막연한 것을 어떻게 하루카에게 정확하게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있잖아, 하루카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하루카에게, 그리고 나에게 도망칠 길을 남겨두고 물어보는 게 고작이었다.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떻게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루카는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 끝에서 신호등이 파랗게 빛났다. 곤란한 것처럼 막연한 웃음을 띠고 하루카가 나를 본다.

 "――파란불이야, 치하야 짱. 가자?"

 예상을 뒤집고 하루카는 아무것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발이 횡단보도를 밟는다. 세 번째 흰 선을 넘을 때 쯤, 자신이 멍하니 서 있단 걸 깨닫고 하루카 뒤를 쫓았다.

 다시 옆에 나란히 서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는지는 알 수 없다.



………

……





 어느 정도 반성은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말을 해 버린 것.

 오늘은 이미 늦은 시간이어서 간단히 먹자고, 둘이서 할 만큼 손이 가지도 않는 인스턴트 라면을 나란히 부엌에서 만들 때도.

 식사를 마치고 별 생각 없이 켠 TV에서 나오는 별로 재밌지도 않은 버라이어티 방송을, 소파에 앉아서 어깨와 어깨가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보고 있는 지금도.

 생방임까 수록중과는 딴 사람처럼 하루카는 필요최저한의 말밖에 하지 않았다. 요리할 땐 "그릇좀 집어 줄래?"나, 지금은 "푸훗."이란 영문 모를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금 흐름에는 딱히 웃을 만한 재밌는 건 없었을 텐데.

 하루카가 입을 다물게 된 이유로 짐작 가는 게 없으니까, 역시 아까 내가 원인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조함에 쫓기고 있던 건 분명하다. 그게 하루카에겐 '엉겨붙는다'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건 아니다. 그건 우리들의 관계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식으로 하루카가 생각한 건 아닐까 옆모습을 슬쩍 봐도, 거기에 긴장이나 경계의 빛은 없다. 평소대로, 라기보단 평소 이상으로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하루카가 평소처럼 수다를 떨지 않는 건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이유가 있어서일까.

 그래, 예를 들면 지금 나와 있는 게 재미없어서, 라든지.

 얘기를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얘기하지 않는다. 과연, 무척 납득이 갔다. 하지만 나와 있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연인 관계, 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인답게'. 지금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수수께끼의 역할. 어떻게 행동하면 나와 하루카는 '연인답게' 있을 수 있는 걸까.

 정신을 차리니 30분짜리 방송은 엔딩을 맞고 있었다. 하루카의 손이 이제 생각났단 듯이 리모컨을 잡았다.

 "내일 치하야 짱은 레슨이었지. 슬슬 샤워하고 잘 준비 할까?"

 "……그러게."

 TV 화면이 새까매지고 다시 방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빗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곧바로 목욕을 하러 가나 했는데, 하루카는 리모컨을 사이드 테이블 위에 돌려놓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은 채로 고개를 꾸벅였다.

 "졸리면 먼저 들어가도 돼."

 "응, 그럴게~."

 얼굴만 이쪽을 보고 하루카는 칠칠치 못하게 웃었다. 무릎 위에 놓여 있던 턱이 움직이고 등이 아주 조금 펴졌다.

 자기 상반신이 언제 하루카에게 다가갔는지, 깨닫지 못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그래야 하는 것처럼.

 생각을 내버려 두고, 난 처음으로 그 행동을 했다.

 언제 난 눈을 감았던 걸까.

 언제부터 내 입술은 미적지근한, 그러면서도 불타는 듯한 신기한 열을 띠고 있었을까.

 입술에 닿은 그 감촉은, 같은 것일 텐데도 거짓말처럼 마냥 기분 좋아서. 살짝 누르면 확실히 탄력이 있는데도, 녹아버릴 것처럼 부드러워서.

 녹아버릴 것 같은 건 너? 아니면 나?

 왠지 걱정됐다.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닐까. 내 입술은 네 그것처럼 부드럽고, 윤기나고, 기분 좋은 걸까.

 어지간히도 머리가 못쓰게 됐는지, 몇 개의 있을 수 없는 모순을 깨달았을 텐데도 그럼 그거대로 괜찮을 거라고, 더욱 사고가 멀어져 버린다. 잔뜩 있었을 엉망으로 뒤섞였던 것들도, 마치 처음부터 어찌 되든 상관없었던 것처럼 내게서 멀어져 간다.

 처음으로 입을 맞출 땐 그에 맞는 상황과 장소를 준비하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그건 하루카에게 있어서 '지금은 아닌' 게 아닌지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한데.

 전자는 이미 한 발 늦고 말았다. 후자는 사후 승낙 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하루카는 용서해 주는 걸까.

 물어보는 대신 다시 한 번 강하게 입술로 누르자, 작은 흔들림이 전해져 왔다. 그녀가 입술만, 아니면 목 위를, 그것도 아니면 전신을 움직인 건지는 눈꺼풀 뒤에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곧 같은 힘으로 되돌아왔다.

 한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꽤 오래 이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을 재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러려고 했어도 초를 세는 기능이 내 뇌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알 방도가 없을 것이다.

 단지 조금 숨이 막힌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감미로운 괴로움이었다. 이대로 호흡이 멈춰버려도 상관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하루카는 어떨까. 역시 그래선 곤란해할까. 아니, 곤란하겠지. 애초에 폐활량은 내가 더 크고, 어라?

 이대로면 내가 하루카를 죽이게 되나?

 ――곤란하다. 하루카가 아니고 내가.

 당황하면서 조금 몸을 뺐다. 입술에 느껴지던 게 없어지고, 자유로워진 입술과 목을 움직여서 짧게 숨을 들이쉰다. 바로 곁에서 푸핫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소가 뇌에 들어가기 시작해서, 겨우 사고가 돌아오고 고동이 잠잠해진다. 이렇게 자신의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단 사실을 새삼스래 깨닫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놀라고 있으니까, 하루카는 더 놀랐을 것이다. 사과해야 하나 싶어서 눈을 뜨려다가,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사이에 다시 입술이 덮인다. 아니, 덮였, 다.

 한 순간 강하게, 탐하듯이 달라붙더니, 그것은 금방 약해져서 아쉽다는 듯이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공기에 닿았을 입술은, 바로 다음에 똑같은 온기에 둘러싸였다. 이번엔 길게, 처음보다 더 부드럽게.

 이윽고 입술이 입술에 붙어있던 감촉이 사라져도 난 한동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과, 눈을 뜨면 뭔가가 끝나버려서 하루카가 거기 없는 게 아닌가 하는 근거도 없는 불안과.

 중심 조금 아래밖에 얼굴의 기능을 제대로 못 쓰게 됐나 생각했다. 하지만 두 귀가 확실히,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며시 내쉬는 숨소리를 들었다. 머뭇거리면서 눈을 뜬다.

 전기 스토브가 켜진 실내는 바깥의 추위와는 연이 없을 텐데,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뺨을 붉게 물들인 하루카가 거기 있었다. 그렇다, 그건 당연한 거고, 하루카는 없어지거나 그러지 않을 테고, 하지만 거기에 하루카가 있는 게 왠지 신기해서 난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텐데, 입술로 느껴지는 확실함에 비교하면 본다는 행위는 너무나 불완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단지 인식하기 위해서 가만히 바라본다. 지금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루카가 아주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전까지 간격이 0이었던 예쁜 입술이 조그맣게 열렸다.

 "……해버렸다."

 해버렸네, 그렇게 대답하는 게 적절한 건지 잠시 고민했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건 요점을 빗나간 소박한 질문이었다.

 "……어때?"

 "어떻냐니. 그야――아니, 어떻고 저떻고가 아니라……그런 거 말해야 돼?"

 하루카를 곤란하게 만들기만 한 그 질문에 대한 질문엔 답하지 않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직도 멍한 머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봤다.

 "이거면 된 걸까."

 "되고 안 되고가 있어, 이거에?"

 "정석이나 그런 게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말하자, 하루카에게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뭐야, 그게. 확실히 갑작스러웠으니까 좀 놀라긴 했지만 말야."

 "그래, 그럼 다행인데."

 "그럼 다음엔…………후후, 제대로, 해 볼래?"

 "제대로라니, 어떡하면 되는 거지."

 "몰라. 치하야 짱이 말 꺼낸 거잖아."

 피식 하는 하루카에게 왠지 분함을 느끼면서, 그럼 제대로 해 주겠노라고 알 수 없는 저항심을 불태운다. 소파 위에 양 다리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본다. 소리 없이 웃으면서 하루카도 웅크려 앉은 자세를 풀고, 나란한 허벅지 위에 양 손을 올렸다. 진지한 얼굴로 지긋이 하루카를 바라본다. 솔직히 어떡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마주보고 가지런히 앉은 것까진 좋은데, 이 자세라면 힘들 만큼 상반신을 기울여야 하루카에게 닿을 것 같다.

 어중간한 분위기와 몇 초의 신기한 시간이 흘렀다.

 "저, 치하야 짱?"

 "…………."

 "저, 잘 부탁드립니다, 예요."

 이번엔 내가 웃을 차례였다. 담담히 고개를 숙이는 하루카가 웃겨서, 나도 모르게 한쪽 손이 입가로 갔다. 하루카는 조금 화난 표정을 지었다.

 "치하야 짱이 이상한 말 하니까 그렇잖아."

 "그랬지. ……그럼, 하루카. 그……괜찮아?"

 "……응. 더 해줘."

 이젠 한계였다. 애초에 참을 생각도 없긴 했지만, 별것 아닌 단 한마디에, 부끄러운 듯이 중얼거린 그 한 마디에, 걸쇠 같은 게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몸을 내민 것보다 조금 늦게, 하루카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다시 한 번이 아니라. 하루카는, 더 해달라고 말했다.

 네 번째 키스. 하루카의 입술이 겹쳐진 채로 조금 모양을 바꾸었다. 일부러 한 번 떨어져 본다. 곧바로, 다섯 번째.

 그 다음부터는 몇 번째인지 세는 건 그만두었다. 쪼듯이, 미끄러뜨리듯이, 가끔 잡아당기듯이.

 즐겁다. 그런 새로운 키스의 느낌. 그 편안함에 모든 것을 맡겼을 때였다.

 빠질 것만 같은 내 입술 옆에 따뜻한 물방울이 닿았다. 내 게 아니다. 놀라서 일단 몸을 뺐다.

 빛을 되찾은 시야 한가운데에, 하루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을 뜬 하루카가 눈가를 검지로 닦고, 그 손끝을 보면서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또 나는 뭔가를 잘못한 걸까.

 "하루카……?"

 "……왤까. 왜일까."

 하루카가 다시 눈을 감고, 어깨를 작게 떨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하루카의 눈을 다시 봤을 땐 거의 눈물이 말라 있었다.

 "저기, 하루카,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면――"

 "으응. 미안, 진짜로 아니야. 분명 아팠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훨씬 옛날 얘기야."

 하루카의 눈은 날 보고 있을 텐데도,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치하야 짱은 여기 있구나."

 "――어? "

 "나도, 또 여기 있을 수 있구나."

 "그건, 그렇지?"

 "……에헤헤. 다녀왔어, 치하야 짱."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하루카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는 이유는, 어쩐지 조금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서와, 하루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번엔 내가 제대로 된 말을 했단 것은, 하루카의 입술이 가르쳐 주었다.



………

……





 다음날. 자명종이 울려도 이불에서 나오지 않는 하루카를 용서 없이 두들겨 깨우고, 우리들은 사무소를 향했다. 오늘은 맑지만 춥기는 춥다.

 "후아암, 졸려."

 하지만 전철에서 내리고도 졸려 보이는 하루카의 의식을 완전히 깨우는 데는, 그 추위도 부족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노니까 그러지."

 "치하야 짱이 자게 두질 않았잖아."

 "……하루카도 그러면서."

 참고로 우리들은 결국 입술로 근접공격이 가능해졌지만, 어젯밤 일을 그대로 묘사한대도 이번 얘기에 R-18 태그가 붙을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시간에 깨워달라고 한 건 하루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일본에 막 돌아온 참이라 하루카는 아직 최소한의 스케줄밖에 없었다. 오늘 오전에 프로듀서와 앞으로의 예정에 대해서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루카가 말한 시간에 맞게 깨워 줬는데 심한 말을 한다. 나는 어떤가 하면 아직 레슨 스튜디오에 가기엔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지만, 모처럼이니 하루카와 함께 집을 나서서 오랜만에 사무소에서 시간을 때우려는 생각이다.

 치하야 짱 오니~. 마녀~. 키스마~. 옆에 있는 하루카가 너무나 시끄럽다.

 "오니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슬슬 절분이구나."

 "맞아. 그러니까 주말에 자러 왔을 땐 콩 뿌려서 치하야 짱을 내쫓을 거야."

 "아무래도 잊어버린 것 같은데, 일단은 우리 집이야."

 이 심기 불편하신 잠꾸러기 공주님은, 집주인을 찬바람 속으로 내쫓을 생각인 것 같다. 덤으로 주말에도 자러 오는 건 확정인 듯하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기쁘군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하루카네 놀러가고 싶은데."

 "아, 괜찮아. 다음 달쯤에 올래?"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흔쾌히 승낙 받고 말았다. 점점 하루카의 상태도 평소로 돌아온 것 같다. 조금 전보단 꽤 걸음이 똑바르게 됐다.

 "그럼……별로 안 바쁜 때가 만약 겹친다면."

 "오케이~. 아버지하고 어머니께도 말해 둘게. 아, 하지만 치하야 짱은 다음 달에 바쁘던가? 중요한 라이브가 있었지?"

 "……그렇지."

 확실히 다음 달 말에는 내 생일 당일에 라이브가 하나 예정돼 있다. 소위 말하는 버스데이 라이브란 거다. 일부러 자기 생일에 라이브를 연다니, '자, 축하하도록.'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피하고 싶다. 하지만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오늘 레슨도 라이브 연습이야?"

 "응, 솔로 라이브기도 하고, 그게 주가 될 것 같아."

 "그렇구나……."

 하루카가 조금 아쉬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미 사무소가 있는 빌딩 앞까지 와 있었다.

 "바쁘긴 해도 하루카가 우리 집에 자러 오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어."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그렇게 말하자, 하루카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어젯밤 같은 일이 계속되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내가 엉망이 될 것 같았지만.

 익숙한 사무소 문손잡이에 하루카가 손을 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루카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간다. 프로듀서와 오토나시 상이 책상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카, 안녕. ――치하야도 같이 왔구나. 마침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이쪽을 돌아본 프로듀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어제도 늦게까지 일을 했던 것일까. 하루카도 금방 눈치를 챘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프로듀서님, 무슨 일 있었나요?"

 "내가 그런 게 아니고, 너희 둘이 말이지. 아니, 결국은 나도 그런가."

 한숨 섞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프로듀서는 앉은 채로 "일단 이걸 좀 읽어봐."하고 한 권의 주간지를 내밀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들면서도 하루카가 그것을 받았다. 페이지를 넘길 것도 없이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 프로듀서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었다. 커다란 고딕체로 적힌 문구에 눈을 크게 떴다.

 '톱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와 키사라기 치하야, 더블 열애 의혹!?'

 "잠깐만요, 뭐에요 이게! 치하야 짱, 설마 내가 있는데도――!"

 "내가 하루카 말고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

 "됐으니까 둘 다, 안을 좀 봐."

 하루카가 페이지를 팔락 팔락 넘기자 금방 그 기사에 도착했다. 한 페이지의 거의 절반 크기로, 나와 하루카가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이건 공항에 있었을 때 사진이다. 언제 이런 걸……. 옆에서 하루카도 한숨을 쉬었다.

 "아~. 그렇군요. 그런 건가요. 열렬한 포옹, 밤샘 데이트, 뜨거운 밤……."

 문장을 골라 말하면서 하루카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루카 짱, 그 반응이면, 어제도 치하야 짱하고 뭔가 있었어!?"

 "오토나시 상, 장난칠 때 아니에요."

 오토나시 상이 책상에서 몸을 내밀면서 거친 콧김을 내뿜는 것을 프로듀서가 타일렀다.

 "일단 확인하겠는데……. 이건 너희들이 맞는 거지?"

 "……네."

 "그렇긴 한데,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저희들, 그, 둘 다 여자인데요. 이런 기사를 써도 아무런 의미 없을 텐데."

 끄덕이는 내 옆에서 하루카가 말했다. 확실히 대다수의 독자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기사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하고 확인할 방법도 없는 얘기에 손을 대서라도, 너희 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이 있단 말이겠지."

 프로듀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적을 만들 만한 행동은 안 하려고 해 왔고, 이런 수단으로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람에 짐작은――간다. 한 사람만, 그것도 엄청.

 "쿠로이 사장이군."

 "쿠로이 사장이야."

 "쿠로이 사장이겠지."

 "쿠로이 사장이겠죠."

 넷이서 나란히 한숨을 쉰다. 요즘 딱히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수법으로…….

 프로듀서가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일단 이미 나돌게 된 건 어쩔 수 없지. 애써서 부정해서 불씨를 늘릴 필요도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긴 상대도 안 할 테고, 조금 떠들더라도 금방 잠잠해질 거야. 하지만 하루카, 치하야――"

 "알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이번 행동은 경솔했어요. 하루카가 오랜만에 귀국한다고 좀 지나치게 들떠 있었던 것 같아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말하면서 조금 늦게 납득한다. 요 며칠간 나 스스로도 내가 좀 이상하다곤 생각했는데, 떨어져 있던 시간은 자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감정을 모으고 쌓고 있었던 것 같다. 분명 하루카도.

 "그럼 됐다. 앞으론 밖에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삼가줘. 하루카도 그거면 됐지?"

 "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역시 조금, 잘 모르겠어요. 저희들, 나쁜 짓 한 걸까요?"

 조금 놀랐다. 프로듀서가 상대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여기서 하루카가 이의를 제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뭐, 너희들은 아이돌이니까. 연애 얘기는 아무래도 절호의 스캔들이야. 밖에 있을 때만 신경 써 주면 됐어."

 "그래, 사무소에서 얼마든 해도 된다구~?"

 "……여러 가지 의미로, 축복받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부정당하는 건 뭔가……싫어요. ――그렇지."

 오토나시 상의 말은 무시하고, 하루카가 손뼉을 짝 쳤다.

 "이렇게 된 거, 돌파해 버리는 건 어때요?"

 "뭐? "

 안경 뒤에서 프로듀서의 눈이 놀라서 커졌다.

 "물론 이제 사람 눈 있는 데서 끌어안고 그러진 않을게요. 하지만 사이좋은 우리들이 같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고 가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다들 알게 되면 이런 걸로 일일이 소란 피우는 사람도 없어질 거예요!"

 "그, 그건 그렇군……. 아니 잠깐만. 지금하고 아무것도 안 변하는 거 아냐!?"

 "과연 그렇네, 하루카."

 "치하야까지……."

 보통  여자 둘이서 좀 끌어안고 자고 가고 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진 않겠지만, 기자의 감이 옳았단 건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이상의 것을 남들 앞에서 하지만 않으면 어차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소문에 불과하다. 솔직히 이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건 단 하나.

 ――여기서 하루카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면, 일을 할 때도 하루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일단은 하루카를 제 버스데이 라이브에 서프라이즈 게스트로 초대하는 건 어때요?"

 "어? "

 이건 하루카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신경 쓰지 않고 나는 계속한다.

 "다음 달에 제가 하루카와 얼마나 같이 있든, 라이브를 위한 비밀 회의였다고 해 버리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그거 좋다, 치하야 짱. 이걸로 눈치 볼 거 없이 다음 주도 자고 갈 수 있어!"

 "방해는 안 할 테니까 나도 가도 돼!?"

 "자, 잠깐만 기다려. 그건 그러니까……어떻지."

 유능한 프로듀서가 거의 펑크 상태다. 조금만 더.

 "그대로 한발 더 가까워진 우리들은 라이브가 끝나고도, 이젠 자고 가는 것도 버릇이 돼 버렸다."

 "대단해, 퍼펙트 스토리야!"

 "……왠지, 그거면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아니, 하지만……."

 "괜찮지 않겠나."

 "사장님!?"

 프로듀서가 놀라면서 몸을 틀었다. 타카기 사장님, 언제부터 계셨던 걸까.

 "아마미 군과 키사라기 군을 믿어 보지 않겠나. 뭐, 어떻게 되든지 나쁜 쪽으론 굴러가지 않을 거야."

 "그럴까요……. 음, 그럴지도."

 프로듀서는 사장님의 말을 음미하듯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로 해 보자. 하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얘기해야 한다?"

 "네!"

 하루카가 활짝 웃었다. 내가 수긍하는 것도 확인하고, 프로듀서는 다시 컴퓨터를 보고 화면에 나와 하루카의 스케줄 표를 나란히 띄웠다.

 "마침 하루카는 레슨을 재개해서 익숙해지고 나서 다른 일을 시키려고 했으니까, 오늘은 이대로 치하야랑 같이 가. 그 쪽엔 둘이 간다고 연락해 둘게."

 "고맙습니다."

 둘이서 고개를 숙이자, 프로듀서는 지쳐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뭐, 말하자면 그거야. 할 거면 되는 데까지 해 버려. 괜한 기사를 쓴 놈이 후회할 정도로. 그리고 누구라도 너희들을 인정해버릴 정도로――"



………

……





 레슨을 마치고 스튜디오를 나올 때쯤엔 완전히 해가 져 있었다. 여름이라면 아직 저녁 해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낼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꽤 땀을 흘려서, 샤워도 하고 머리도 잘 말렸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앞으론 몸 상태가 안 좋아질 여유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하루카는 하루카구나."

 "무슨 의미야?"

 "솔직하게 칭찬하고 있는 거야."

 할리우드에 있던 동안엔 노래나 댄스와는 일 관련으론 연이 없었을 텐데, 하루카에게 그런 블랭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왠지 조금 표정을 흐렸다.

 "……치하야 짱한텐 못 당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작은 표정의 변화. 시선을 떨어뜨리는 하루카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곧 그녀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그보다 있지, 둘이 레슨 같이 한 거 진짜 오랜만이다. 내가 치하야 짱 라이브에 실례하는 건 고작 몇 곡이지만, 역시 엄청 기대돼!"

 "나도 그래."

 무엇보다도 이걸로, 올해도 하루카와 함께 생일을 보내는 게 확정된 것이다. 바쁜 하루가 되긴 했지만 거의 못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자연스럽게 발이 가벼워――지려다, 어떤 것을 깨닫고 걸음이 느려졌다. 조금 벌어진 거리를 이상하게 여겼는지 하루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옆에 서서 보폭을 맞춘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잠시 후에 나와는 다른 방향을 향했다.

 "하루카는 오늘은 집에 돌아가는 거지?"

 잠시 걷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해 본다. 하루카의 가방이 우리들 사이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린다.

 "응. 역시 우리 집에도 가야지."

 그건 당연한 일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치하야 짱?"

 내 발은 멈추고 마는 걸까.

 헤어지기 싫다는 억지스런 감정이 있단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도 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내 발을 움츠렸다.

 하루카가 걱정스럽게 내 눈을 들여다 본다.

 안 돼, 아니야.

 난 하루카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하려는 게 아닌데.

 또 오늘 레슨을 떠올린다. 꽤 하드한 레슨이었지만, 힘들어도, 넘어져도, 하루카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흐르는 땀조차도 빛나 보여서, 난 몇 번이나 연습 중에 발을 멈추고 넋을 잃고 보고 말았다.

 하루카의 웃음은――아니, 하루카의 모든 것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내가 그랬듯이. 아무리 내가 가까이 있어도, 둘만의 연습시간을 보내도, 한 번 스테이지에 오르면 그녀는 누구든 매료시킬 것이다. 그걸, 난――

 "치하야 짱."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내 손을,

 "잠깐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하루카의 손이, 잡았다.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하루카는 내 손을 끌었다. 대중교통을 쓰려고 하지 않는 걸 보면 별로 멀지 않은 거겠지. 이 방향은……사무소?

 좁은 길을 걸어간다. 드문드문 설치된 가로등이 우리들만을 비추었다. 하루카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골목을 돌았다. 이젠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간소한 공원이었다. 이 추위, 이 시간. 아무도 없다.

 하루카가 드디어 내 손을 놓았다.

 "치하야 짱, 여기 기억해?"

 "기억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내가 하루카를 불렀던 곳이다. 작년 하루카 생일에, 꽃놀이를 하고 싶다는 하루카의 작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당연하지만 지금 시기에 연분홍 꽃은 없었다. 아주 잠깐밖에 시선을 모으지 못하는 굵은 나무가 몇 그루나, 그저 우둔히 서 있을 뿐이다. 멈춰 서자 몸이 춥다. 난 천천히 하얀 숨을 내쉬었다.

 "하루카, 돌아가자. 이 계절에 여기엔 아무것도 없잖아."

 "으응. 있어."

 하지만 하루카는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딱 잘라 말했다.

 "지금도 계속. 벚꽃은 있어."

 그야 분명 벚나무는 있지만, 그렇게 대답하기 전에 하루카가 말을 이었다.

 "나 있지, 전에 여기 벚꽃을 보면서 벚꽃은 아이돌 같다고 생각했다고, 얘기 했었지."

 "……응."

 "확 피고, 지고. 그 때 치하야 짱이 부정……이라기보다, 다른 생각을 들려줬는데, 응, 그게 무척 옳아서, 기뻐서."

 하루카가 그 날을 그리워하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역시, 유감이지만 내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고 요 1년 쯤 몇 번이나 생각했어. 여러 가지가,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대로 있을 순 없어서."



 "――그래도 있지, 역시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 있어."

 하루카가 나를 돌아보고, 만개한 웃음을 피웠다.

 ――또.

 숨이 막혔다.

 ――또다.

 모든 생각을 하루카에게 빼앗긴다.

 "있지, 치하야 짱. 난 작년에 여기서 치하야 짱한테 받은 걸 계속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 행복하게 해 준 시간의 추억도, 쭉 잊지 않을 거야."

 하루카가 반걸음 거리를 좁혔다.

 "나 말야, 이런 애니까, 벚꽃처럼 예쁘진 않지만. 갈색에 울퉁불퉁한 줄기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변하지 않는다면. 치하야 짱이, 좋아한다고 말해 준다면."

 글쎄 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믿어줘. 난 여기 있어. 치하야 짱이 원해 주는 한은, 난 계속 치하야 짱 곁에 있을 거야. 내가 어떻게든 같이 있고 싶은 걸."

 열심히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는 듯한 그 목소리가.

 내가 한동안 계속 앓던 응어리를, 이번에야말로 천천히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질투나 집착이 될 뻔 했던, 겨우 가까워진 거리가 어떤 계기로 다시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어떻게든 더, 더 가까워져야 한다. 연인답게 굴어야 한다. 그런 서툴고 헛돌기만 했던 초조감도.

 "……나도, 이거면 된 걸까."

 "난 치하야 짱이 좋아."

 어딘가 빗나간 것 같기도 한 그 짧은 말이,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나를 전부 긍정해 준 것 같았다.

 "……나도, 하루카를 좋아해."

 "고마워. 그러니까 우리들 페이스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자. 다시 여기부터."

 고개를 끄덕이자 하루카는 또 내가 좋아하는 웃음을 지어 주었다. 부드러운데도 한방에 넉 아웃 당할 것 같은 웃음이다. 나도 약해졌구나 하고 그만 쓴웃음을 짓는다.

 정말로 난 물러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루카가 또 멀어진다면, 난 내가 아니게 될 것 같기까지 하다.

 반대로 아까 레슨 동안엔 하루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어디까지라도 목소리가 뻗어 나갈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만한 강함을 얻는 것과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도 끌어안고.

 이런 나지만. 하루카는 곁에 있어 주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단은 라이브를 성공시키는 것부터일까."

 "응! 대대대성공시키자! 모두가 꺄훙 하게 만들어야지."

 어디까지라도 가자. 그 때와는 또 다른 거리의 우리들로, 다시 이곳에서부터.

 "아, 그러고 보니 하루카. 아직 하나 모르는 게 있는데."

 "뭔데?"

 "요즘 왜 조용히 있는 일이 많아진 거야?"

 "아, 그거 말이지. 말수를 줄이고 치하야 짱이랑 지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서, 좀 실험해 봤어. 해 보고 깜짝 놀랐는데, 떠들지 않아도 치하야 짱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서――――어? 혹시 신경 쓰고 있었어?"

 "……아니, 전혀."

 분명 하루카도 하루카 나름대로 나와의 관계성을 이리저리 더듬어 가면서 굳건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시시한 일로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었다니.

 이젠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잠깐, 치하야 짱. 뭐가 웃긴데?"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입을 삐죽 내미는 하루카 얼굴이 웃겨서 웃음이 더 커질 것 같다.

 필사적으로 참으면서, 이번엔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하루카의 손을 잡았다.

 깍지 끼고 잡은 손에, 그녀가 세게 힘을 주는 걸 기쁘게 생각하면서.

 난 '연인답게 역에서 헤어지는 법'을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또 조금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그로부터 1개월 정도 지난 2월 말, 961프로덕션 사장실.

 잡지의 기사를 보던 쿠로이 타카오는 참지 못하고 짜증을 폭발시켰다.

 거칠게 주간지를 책상위에 던지는 바람에, 뒤표지에 부딪힌 트럼프 몇 십 장이 흩어졌다.

 며칠 전에 열린 키사라기 치하야의 버스데이 라이브가 대성공으로 끝났다고, 빨리도 특집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프라이즈로 아마미 하루카라고? 그 둘을 한 번에 부술 수 있던 게 아니었나."

 뭐가 '나쁜 얘기가 아니다'냐, 그 도움 안 되는 놈, 그렇게 쿠로이 타카오는 짜증을 감추러 하지 않았다.

 짜증나,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창밖을 바라보면서 만약을 생각한다.

 역시 이 방법으론 타카기를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이 결과가 녀석이 말하는 '아이돌을 믿는다'인지 뭔지 하는 성과라면.

 한 번쯤은――

 이젠 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오랜만에 보는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든다. 두 번째 연결음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위, 나다."

『엉? 진짜로 쿠로이 아저씨야?』

 "오랜만이군, 토마."

 아마가세는 사무소를 떠났지만,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전과 같은 것에 쿠로이는 내심 안도했다.

『그래서? 일부러 전화까지 걸고, 뭔가 용건이 있는 거지?』

 "물론이다. 그, 뭐냐……."

『아, 답답해. 끊는다?』

 "잠깐만. ――그거다. 그냥 한 번, 나도 가끔은 아이돌을 믿어 볼까 생각해서 말이다."

『이제 와서 뭐야.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거든.』

 "얘기만이라도 들어 보지 않겠나?"

『…………뭐, 아저씨가 변했다면야 들어는 줄게.』

 "좋아. 새 아이돌 유닛 기획이다만."

『응.』

 "멤버는 토마, 호쿠토, 쇼타 셋으로 변화는 없다."

『그게 어디가 새로운데?』

 "잘 들어라. 너희 셋이 삼각관계 유닛을 말이다――"

 찰칵.

 뚜, 뚜, 뚜.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되냐고!!"

 쿠로이의 외침이 넓다란 방 안에 허무하게 울려 퍼졌다.

 잘 닦인 바닥 위.

 흩어진 카드 중, 뒤집어진 두 장의 퀸이 겹쳐져 천장을 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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