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가 리츠코를 만나러 교무실로 가 버려서, 빨리 다음 수업 교실로 가서 준비를 하겠다는 히비키와 헤어져 이오리는 혼자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에 받은 성의란 물건을 난폭하게 옷장 속에 쑤셔넣고 혀를 찬다.
'이런 게 있어도 그 녀석한테, 치하야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리츠코가 치하야에게 아이돌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렸을 때, 이오리는 물론 분했고 화가 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력함이 화가 나고 비참했다.
그런 녀석한테 뒤쳐지다니.
아이돌이 될 수 없다면 자신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여기 있을 의미는――
옷장에 주먹을 내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팔을 들어올렸다가――앗 하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에 온 또 하나의 목적.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오두막에서 발견한 물건을 집어넣어 두었던 걸 떠올리고, 옷장에서 꺼내 하나씩 책상에 늘어놓는다.
낡아빠진 종이, 쇠사슬로 묶인 책.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
종이에 그려진 마크는 아직까지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열쇠도 어디에 쓰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라면――
이건 쇠사슬을 벗길 수가 없어서 손대지 않고 있던 물건이다. 그리고 지금 이오리라면.
'물질변환. 지금이라면 간단히 쓸 수 있을지도 몰라! 컨트롤이 어려운 전격으로 태워서 끊을 필요도 없어.'
집중하고 오른손을 책으로 향한다. 순식간에 굳게 책을 닫고 있던 사슬은 몇 가닥의 얇은 철사로 변했다.
기대에 떨리는 손으로 철사를 풀고 책을 손에 든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겨도 넘겨도, 어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만 적혀 있어서 전혀 읽을수가 없어!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괜히 쌓여 버린 짜증을 풀듯이 책을 바닥에 내던진다.
'왜……! 어째서냐구……!'
분한 것처럼 낡아빠진 책을 노려본다. 그리고 깨달았다. 페이지 사이에서 끄트머리가 삐져나온, 변색된 양피지.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끄집어 내 펼쳐 본다.
이건, 지도……일까.
그래, 틀림없다. 그것도 이 학원 거다. 지금 있는 기숙사, 수업에서 쓰는 교사, 조금 떨어져 있고 아무도 발을 들인 적 없는 구교사,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쓸데없이 넓은 부지.
그런 지도의 구교사 근처에, 조그맣게 가위표가 그려져 있다.
입학하고 나서 이미 주변은 대충 걸어 봤지만, 이런 데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혹시……땅 밑? 진짜로 이거 보물 지도였던 거야?'
스스로도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아버지가 무언가를 숨겨 두었을지도 모른다.
겨우 발견한 단서.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다. 교복이 더러워지면 곤란하니 다른 옷으로 일단 갈아입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군데 군데 녹슨 열쇠를 손에 든다.
가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
……
…
혹시 모르니 유키호에게 삽을 빌려 왔다. 그렇다기보단, 그 자리에서 "엄청 튼튼한 걸 만들어 줘!"라고 억지로 부탁해서, 학원 의자를 멋대로 변화시키는 걸 주저하던 유키호에게서 뺏어 온 거지만.
'여기 맞지?'
지도에 그려진 마크 근처에 서 본다. 옆에는 벚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을 뿐, 역시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조금 실망하면서도, 모처럼 왔으니 이오리는 반쯤 될대로 되란 심정으로 삽을 들고 벚나무 뿌리 부근을 파내려갔다.
깡 하고 삽 끝이 뭔가 딱딱한 것에 부딪혀서 손이 저렸다. 조금 더 흙을 치우자 의외로 큰 철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삽을 고쳐잡고, 기대에 가슴을 두근대며 작업을 계속한다. 역시 여기엔 뭔가가 있었어!
땅 아래에서 나타난 건 타타미 반 장 정도 크기의 철로 된 사각형. 손잡이가 달려 있는 걸로 봐선 문일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운 그것을 어떻게든 미끄러뜨리자,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과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었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건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본능적인 공포에 몸이 움츠러든다. 좋다고 이런 어둠 속에 들어가려는 사람 따위 분명 없을 거다.
'하지만 난 반드시 찾아내야만 해. 아버지가 숨기고 있는 뭔가를.'
기대보다 공포로 떨리는 다리를 질책하면서 한 걸음, 어둠속에 걸음을 내딛는다. 튼튼한 감촉에, 일단 무너지진 않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결심하고 나선형 계단을 내려간다. 이오리의 발소리만이 돌로 둘러싸인 공간에 울렸다.
이 학원에 지하실이 있다니 들어본 적은 없다. ……소문으로는 있었지만.
길고 긴 계단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생각하는 것도 싫어졌을 즈음, 이오리는 아래로 이어지는 단차가 갑자기 끝난 것을 깨달았다.
그 공간은 계단을 끼고 한 쪽으로는 어두침침한 석재 복도가. 반대편에는 문 하나가 있었다. 이 열쇠는 여기서 쓰는 건가 생각했지만, 자물쇠가 보이지 않는다. 밀어도 당겨도 꼼짝도 하지 않으니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잠겨 있는 것 같다. 아마 이쪽이 아니다.
뒤돌아서 복도 끝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언제 켜졌는지 모를 양 벽에 걸린 양초 몇 개가, 흔들 흔들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복도를 비추었다.
몸을 추스리고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두운 복도 막다른 곳. 눈 앞에는 커다란 문. 그리고 그걸 잠그고 있는 자물쇠.
역시 돌아갈까 생각했다. 기분 나쁜, 정말로 기분 나쁜 느낌이 든다. 돌바닥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때문이 아니라, 어두침침한 복도 분위기 때문도 아니라.
이 문 너머. 마치 뭔가를 감추기 위한 게 아니라, 뭔가를 가두어 놓으려는 듯한.
열쇠를 가슴 앞에서 꼭 쥐고 어깨를 들썩이며 거칠게 숨을 쉰다. 열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다.
하지만 이오리는 이끌리듯이, 누군가에게 꾀이듯이.
떨리는 손이 열쇠를 움켜쥐고 자물쇠에 찔러넣어 간다. 무서울 정도로 딱 맞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멈추지 않는다.
그 손이 천천히 돌고,
찰칵.
무겁게 울리는 해방의 환희.
팔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 안쪽에, 지옥의 불꽃처럼 흔들리며 빛나는 두 개의 붉은 눈동자를 봤을 때.
이오리는 자신이 되돌이킬 수 없는, 터무니없이 강대한 무언가를 깨우고 말았단 것을 알았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61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