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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마스SS]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 -7
드디어 하루치하에요, 하루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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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공주 THE HUNDRED LILY
6장 벚꽃 소녀
빈 교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아즈사 상과 얼굴 마주치기가 거북하다――는 일은 없었지만. 오늘은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었다.
짧은 식사를 마치고, 문고본 한 권만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요 며칠간의 따스한 햇살은 오늘도 학원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이런 날엔 역시 밖에 있는 편이 기분도 좋다는 말이다. 앉을 곳을 찾으면서, 역시 벚나무 밑이 제일이란 생각을 한다. 모처럼 익힌 부유술이 나설 자리가 없단 건 이미 이전 수업에서 통감했다.
넓은 구획을 둘러보고, 조금 높은 언덕 위에서 연분홍 꽃잎을 단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오늘은 저기까지 가 볼까.
느긋하게 걸어도 그다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다. 올려다보니 지금까지 이 학원에서 본 어떤 벚나무보다도 굵고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엉덩이 밑에 스커트를 잘 펴고 나서, 안심하고 거목에 등을 기댄다.
지금부터 읽는 것도 며칠 전부터 조금씩 읽어 나가고 있는 이야기다. 허락되지 않는 사랑에 고민하는 남녀는, 결국 서로의 바람과는 달리 떨어지고 말았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괴롭고 고통스러워 보이는데, 왜 사랑을 하는 걸까. 그것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엔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시선이 글자를 쫓아 위에서 아래로. 또 위에서 아래로. 벚꽃이 천천히 떨어지는 가운데, 포근한 시간이 흘러간다. 살랑 살랑 바람이 뺨을 쓰다듬으며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봄 향기를 나른다. 아무래도 이곳은 지금까지의 어떤 곳보다도 내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았다.
20페이지쯤 읽어 나갔을 때였다.
누군가가 풀을 밟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요즘엔 손님이 많구나, 한숨을 쉬고 싶어지며 문고본을 옆에 두었다.
"너……아이돌이 되고 싶어?"
등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서, 어라 하고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그 질문이 갑자기 뭐라는 건지 영문 모를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지금까지 이 학원에서 들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돌아본다.
본 적 없는 교복을 입은 소녀가, 양 손을 뒤에서 맞잡고 서 있었다.
검정색을 바탕으로 한 세일러복. 머리에 단 리본 두 개가 바람을 맞아 흔들리고, 봄 햇살과도 같은 따스한 미소를 띠고 있다.
소녀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라고 싶은 건 내 쪽이다.
하지만 넌 누구냐는 의문보다도 먼저, 자연스럽게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되고 싶냐고 하면, 되고 싶어.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내 쪽에서 묻자, 소녀는 미소를 더 깊게 만들고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그 교복, 그 학원 거지. 그러니까 너도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서."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서인지, 그녀에게 신기한 점이 너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그러는 너는, 어디 학교야……?"
"나? 난 네가 다니는 데 옆이야."
가까운 데에 학교가 있었다니, 처음 알았다. 하지만 어디 학교든지 이 학원 학생이 아니라면 능력을 가진 건 아닐 것이다.
별로 비밀로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외부인에게 어디까지 얘기해도 되는 건지 잘 알 수 없어서 긴장과 경계로 조금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부드럽고 상냥했다. 금방 어깨의 긴장이 풀어져 간다.
"이웃 사촌이란 걸로 있지. ……옆에 앉아도 돼?"
"어? 응, 괜찮아."
그녀가 바로 옆에 털썩 앉았다. 조그맣게 달린 리본이 들에 핀 붉은 꽃처럼 보여서였을까. 그녀의 머리에서도 봄의 풀꽃 같은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자잘한 것을 눈치챌 정도로 자기 가까이에 사람이 있다는 게, 내게 작은 충격을 주었다. 이 학원에 오고 나서는 누구도 들인 적 없는 영역이었는데. 전혀 모르는 소녀가 거리를 좁혀 오는 기묘한 감각. 하지만 그것은, 왜인지 싫지 않아서.
소녀는 말을 하지도 않고, 세운 무릎에 두 팔을 두르고 어딘가 멀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옆얼굴을 보고 있던 나도 그녀의 시선 끝을 본다. 거기에 있는 것은 우리들이 다니는 학원이었다. 그녀도 아이돌을 동경하는 소녀인 것일까.
묻고 싶은 건 잔뜩 있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우리들은 계속 말 없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몇 번 주고받은 말.
그것이 봄 향기의 소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전부였다.
………
……
…
다음날도 맑개 잘 개인 날이었다.
역시 독서를 하러 밖으로 나온 발이 나도 모르게 향한 곳은 그 언덕이었다. 어제의 신기한 소녀가 오든 오지 않든, 별로 관계는 없었다. 그 장소가 지금 계절에 가장 독서하기 좋은 곳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어딘가, 그녀가 오늘도 나타나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자신이 있는 것도 분명했다.
기대. 다른 사람에게 능동적으로 어떤 욕구를 느낀 건 얼마만일까. 이것도 요즘 내 안에 싹튼, 이해할 수 없는 것,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 중 하나인 것일까.
벚나무를 등받이 삼아 앉고 책을 편다.
어제보다 빨리 그녀가 나타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독서에 집중하지 못해서인지.
10페이지도 읽기 전에 다시 등 뒤에서 그 부드러운 목소리가.
"오늘도 있구나. 혹시 나 만나러 와 준거야?"
돌아보자, 신기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소녀는 어제와 같은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별로……. 그냥 여기가 맘에 들었을 뿐이야."
인정해 버리는 것도 왠지 싫어서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그녀는 아주 조금 미소를 쓸쓸하게 바꾸었다.
"그렇구나. 난 여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럼 왜?"
"으음. 그러는 게 나……니까?"
말 끝을 조금 올려도 곤란하다. 묻고 있는 건 내 쪽인데. 모처럼 '알고 싶다'고 생각해도, 모르는 것만 잔뜩 늘어난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옆에 앉은 그녀는 오늘도 시선을 학원쪽으로 향했다.
이번도 이걸로 얘기는 끝일까, 그렇게 생각했던 때.
"있잖아, 너……이름은 뭐야?"
이렇게 가까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조금 놀라워서 옆을 돌아보니, 소녀는 나를 보면서 조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키사라기 치하야야."
그렇구나. 아직 우리들, 서로 이름도 몰랐구나. 그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뜻이겠지.
――조금 더. 조금만 더.
"너는?"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쯤, 누구도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난 하루카. 아마미 하루카야."
봄 향기라고 써서, 하루카. 그렇게 말하고 웃는 그녀에겐 이 이상 없을 딱 맞는 이름처럼 느껴져서.
"하루카."
조그맣게 중얼거려 본다. 입술에 올려 본 그 이름은, 달콤한 향기가 나는 허브티를 입에 댄 것 같았다.
"……이름 그대로구나."
"그거 무슨 뜻이야?"
좋은 이름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내 입에서 나올 땐 뭔가 뼈가 있는 것 같은 완곡한 말이 되고 말았나 보다. 야유받았다고 생각했을까, 아주 조금 꽃봉오리처럼 뺨을 부풀리는 그녀의 표정 또한 귀여웠다.
"딱히 의미는 없어."
딱히 의미는 없는, 쓸데없을 시간. 그것은 봄 향기에 둘러싸여서 오늘도 흘러간다.
………
……
…
우산 쓰는 법을 잊어버릴 것만 같다. 그런 시시한 것을 어렴풋이 생각했다.
다음 다음 날도, 나는 정신을 차리니 언덕 쪽으로 걷고 있었다. 지정석이 되어 가고 있는 거목의 뿌리 부근에 앉는다.
처음에 만났던 날과 똑같이, 오늘도 그녀는 나타났다. 마음속에 안도가 천천히 퍼졌다. 왜일까. 딱히 그녀가 오지 않아도, 나에겐 아무것도 나쁠 게 없을 텐데.
"오늘은 뭘 하고 있어?"
그녀의 물음에 돌아보면서, 물론 독서야――하고 말하려다, 양손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난처한 기분이 된다. 덮을 책이 없다.
"이, 일광욕이야."
낯부끄러워서, 괴로운 변명을. 소설을 가져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래선, 이래선 마치.
내가,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것 같잖아――
"흐~응, 그렇구나~."
조금 기쁜 것처럼 장난스럽고 순진하게 말하면서, 소녀는 오늘도 내 옆에 앉는다. 리본과 봄 향기를 흔들면서.
"지금 있잖아, 점심시간이지? 왜 치하야 짱은 혼자서 여기 있는 거야?"
아까와 비슷한, 아까보다 긴 질문. 그 말 속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듣고, 아주 조금 기뻐진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그다지 재밌지는 게 아니다.
"딱히 따로 할 게 없어서 그래.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하지만 치하야 짱, 지금 나랑 있잖아?"
바로 그렇다. 나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지금도 다음 계절을 향해, 점점 벚나무가 그 꽃을 날리는 것처럼.
"……아마미 상은――"
"있잖아, 잠깐만."
"……왜?"
"어제는 '하루카'라고 불렀었지?"
"성이 싫어?"
"그런 게 아니라, 그런게 아니라 있지, 아, 정말!"
그녀는 왠지 분하단 듯한 얼굴을 한다.
"아무튼. 다음에 아마미 상이라고 부르면 점심밥 없어!"
"왜 네가 정하는데――"
소녀가 기대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뭐, 됐나.
"――하루카."
"응."
하루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그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치하야 짱에게 제안이 있는데, 학교는 역시 친구를 만들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해."
"……내가 이 학원에 온 이유는 그런 게 아닌 걸."
그럼 왜, 라고 물어볼 걸 예상하고 대비를 한다. 가까운 거리에 있다곤 해도 이 앞은 누군가를 들이고 싶은 곳이 아니다.
뺨의 긴장을 가능한 한 숨기고, 하루카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구나. 하지만 치하야 짱하고 난 벌써, 친구 돼버렸는데 말야."
"……뭐?"
싱긋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 놀라서 멈춰버린 뇌를 어떻게든 움직여서 하루카가 한 말을 곱씹는다. 친구. 친구…. 그런 걸까. 아직 만난지 3일밖에 안 된 그녀가?
"어떨까."
"너무하네, 치하야 짱은."
한 번 마주친 시선을 다시 한 번 피하고 중얼거리자, 하루카는 섭섭하다는 듯이 살짝 머리를 긁었다.
"뭐어, 나, 봄이 끝날 때쯤엔 멀리 가버리는데 말야."
"……어?"
쓸쓸한 목소리 그대로 하루카가 이은 말에, 눈을 크게 뜬다. 이런 시기에 전학이라니.
"그래서, 어쩌면 치하야 짱에겐 난, 친구로 삼으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추억만을 남기고 가는 친구. 그것이 내게 필요한가 아닌가로 말하자면, 물론 필요 없다.
"――만약 치하야 짱이 그래도 된다고 말해 준다면, 기억해 준다면, 난 계속 여기 있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여기에 남은 내 추억 속에서만. 그런 여유 공간을 가졌던 기억은 없다. 없지만.
"……기억해 둘게."
그렇게 대답해 버린 건 왜일까.
옆에서 기쁘단 듯이 웃는 하루카를 보고 싶었으니까?
처음 겪는 것, 몰랐던 것에 대한 탐구심 때문에?
모르겠다. 하루카와 함께 있으면 내 안에 모르는 것만 잔뜩 늘어 간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런 자신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하루카는 학원과는 관계 없는 사람이라서일지도 모르고, 곧 어딘가로 가 버린다고 하니까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누구보다도, 하루카가 옆에 있는 게 싫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고까지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하루카에게라면, 내 안의 싫은 부분도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자신과, 마주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아이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거기에 가까워지려고 하고 있어."
그것은 처음 만났던 날, 처음 하루카의 질문에 대한 답.
"그렇게 바라게 된 건, 이 학원에 온 건, 어떤 사고가 계기였어."
그것은 아까 말하기를 주저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과거의 이야기.
하루카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서, 무릎을 끌어안은 양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나한텐 남동생이 있었는데. 당시에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됐는데도, 공원에서 튀어나온 축구공을 쫓아서 허둥대면서 차도로 나가 버려서."
근처의 공원에 남동생을 보러 갔던 마침 그 때.
"평소엔 그런 짓 안 하는 애였는데. 운 나쁘게도, 서행해야 하는 좁은 길을 커다란 트럭이 빠른 속도로 그대로 치고 들어온 거야."
뇌리에 되살아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광경. 급 브레이크에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는 소리.
"그래서, 남동생은……."
하루카의 슬픈 중얼거림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숙이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나를 비춘다.
"그리고 이건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모르겠는데. 이미 능력을 발현한 나는 그걸 방관한 채로 서 있지 않았어. 그런 건 할 수 없었어. 생각하기보다도 먼저 오른손이 튀어올라가 버려서."
결코 닿지 않을 손은 내 순수한 소망을 형태로 바꾸어 냈다. 바꾸어 내고 말았다.
"내가 처음에 깨달은 내 능력은 지키기 위한 힘이었어.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는, 단단하고 얇은 장벽. 하지만 만들어진 그건, 동생을, 유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우직 하는 기분 나쁜 소리. 반투명한 장벽에 격돌한 트럭의 운전석은 한순간에 찌부러졌다. 지키기 위한 힘은, 다른 누군가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유마저 완전히 지키지 못했다. 그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힌 건, 나다.
"이제 됐어. 이제 됐어, 치하야 짱……."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하루카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나는 용서받기 위해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내 죄를 용서해 줄 사람은 하루카가 아니다.
"난 금방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했어. 유도 잠깐 멍하게 엉망이 된 트럭을 보고, 그리고, 나를 봤어."
내 목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되지 못한 소리. 그리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내게 가장 소중했던 남동생의, 조용히 절망한 뒷모습.
"그 눈에 떠올라 있던 건, 물론 공포였어. 그야 그렇지, 자기 누나가 순식간에 살인자가 된 거니까……."
지금,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건 그 날, 그 장소에, 두고 왔다. 다른 수많은 감정과 함께. 내게 눈물을 흘릴 자격 같은 건 없다. 살인자인 내게, 무언가를 즐길 자격 같은 건 없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일으킬 순 없어. 이제 유의 곁에도 있을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와서, 도망치듯이 이 학원에 왔어."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 날, 맹세했다.
"여기서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 그 사용법을 익히면, 이번에야말로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고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아. 그렇게 하는 것밖에, 그 운전수에게, 유에게, 속죄할 방법이 없어……."
내 고백을, 하루카는 비통한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도 날 싫어하게 됐을까. 나 같은 사람하곤 엮이기 싫어졌을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럴 만한 일을, 난 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더 이상 소중한 사람 같은 건 필요 없었어. 지키고 싶은 건, 필요 없었어. 그런데, 너는……! 너희들은……."
도망쳐 왔을 장소에서, 혼자 있고 싶었을 장소에서, 그래도 누군가는 곁에 있었다. 아즈사 상, 타카츠키 상, 하기와라 상, 가나하 상, 마코토와 리츠코, 미나세 상도 그렇다.
가능한 한 엮이지 않도록. 다가오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에 뚜껑을 덮어, 계속 계속 감정을 죽이고 지내왔다.
하지만 사실은 훨씬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만약 그녀들의 몸에 그 때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난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뻗고 말 것이다. 그러고 말 정도의 확실한 시간이, 우리들 사이엔 흐르고 말았다. 계속해서 밀쳐내 왔던 나 같은 놈을 버리지 않고, 개개인의 형태로 친구로서 봐 주었던 그녀들의 눈은, 정말로.
정말로, 본의는 아니지만. 이제 쓸데없는 거라고 버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루카가 내 뒤로 돌아, 나를 살짝 끌어안았다.
놀라서 뒤돌아보려고 하자,
"미안해, 지금은 앞만 보고 있어."
라는 말로 금지당했다.
내 가슴께에서 포개진 팔. 등에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 하루카의 온기가 전신으로 전해져 온다.
글쎄, 가깝다니까. 왜 너는――
톡 하고, 내 목덜미에 따뜻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분명 핥으면 짠 맛이 날 것이다.
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너는 울 수 없는 나 대신에 눈물을 흘려 주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햇살 아래, 포근한 시간이 흘러간다. 온화한 바람은 한 송이씩 벚꽃을 흩어 간다. 그것은 계절이 바뀌고, 이 시간이 끝을 향해 간다는 분명함이고.
하지만, 왜인지 사랑스럽다. 바로 옆에 있는 하루카의 머리 향기를 날라 주는 바람이. 어느새인가 좋아하게 된 봄 향기가.
"만약 치하야 짱이, 아픈 건, 괴로운 건 싫으니까 혼자 있겠다고 해도 있지."
하루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다정하게 튀었다.
"난, 치하야 짱 곁에 있고 싶어. 멋대로라서 미안."
"혼자 있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구나."
농담처럼 말하자 작은 웃음과 함께 느껴진 입김이 간지러웠다.
"있잖아, 그거 알아? 벚나무 밑에는 여자애가 잠들어 있대."
"'잠자는 공주' 전설 말이지. 이 학원의 전래동화. 하루카도 알고 있다니, 꽤 유명한 소문이 돼 버렸나 보구나."
"응. 분명 그 여자애는 계속 계속 혼자 잠들어 있겠지. 아무리 꿈속이라곤 해도, 그런 건 역시 쓸쓸해. 나, 잘땐 누가 손 잡아줬으면 하는걸."
"하루카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구나."
"응, 맞아――아니, 아냐, 지금 건 없었던 걸로! 그게 아니라, 치하야 짱은 '잠자는 공주'님이랑은 다르게, 모처럼 이렇게 내가 있으니까 말야――"
팔을 풀고 다시 옆으로 돌아온 하루카는, 부드러운 풀꽃 위, 나와의 사이에 살짝 손을 내려놓았다.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손, 잡고 있자."
머뭇거리며 놓인 왼손에 시선을 향한다. 가느다랗고 깨끗한 손끝. 내 손도, 다시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을까.
하루카의 말엔 답하지 않고, 내 오른손을 살짝 그녀의 손에 올렸다.
하루카가 기쁜 듯이 웃는다.
"이걸로 우리들, 친구네!"
"글쎄 어떨까, 아마미 상."
"아앗, 아마미 상이라고 그랬어! 치하야 짱, 내일 점심 없어~!"
성으로 불러 주자, 하루카는 조금 화내고서 금방 표정을 풀었다. 그걸 따라서 내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르고 만다.
이어진 손바닥이 따뜻하다.
분명 그건 무척 간단한 일이고. 하지만 그대로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 손만큼은 놓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61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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