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안녕, 미키. 착하구나. 그럼 하나만 더. 너희들, 은색 머리를 한 여자애 못봤어?"
"아즈사 상이 타카네라고 부른 사람이라면, 구교사 쪽으로 갔어."
리츠코의 질문에 답하면서, 그래, 점심시간에 야요이에게 약품을 주사했던 리츠코는 그 타카네란 사람이 변신했던 거라고 겨우 깨닫는다.
하지만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인체 변화를 간단히 행하는 그녀는 대체――
"그렇구나. 엇갈렸나 보네. 그러니 안 보이지……. 너희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리츠코가 정면으로 미키를 본다. 이제 이리저리 생각할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미키, 너도 기다렸지? 그럼――간다."
리츠코가 뛰었다. 미키가 낫을 몸 앞쪽으로 들었다.
그대로 격돌할 거라 생각했던 둘은, 하지만 리츠코 쪽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꾸어 미키 옆을 지나쳤다. 그대로 미키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계속 도망다니기만 해선 미키를 이길 수 없는 거야."
"글쎄, 어떨까."
리츠코가 미키 머리 위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 리츠코를 보고, 미키는 낫을 다시 쥐고 단숨에 돌진했다.
"윽!?"
하지만 고통에 얼굴을 찌푸린 것은 미키였다. 처음으로 그녀의 팔에서 눈과 같은 색의 피가 방울졌다. 리츠코는 손끝 하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미키를 내려다보고 있다.
"뭘, 한거야."
증오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는 미키에게, 리츠코는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손끝에서 무언가 빛나는 얇은 것이 뻗어 있다. 실 비슷한 그것은 점점 녹색 빛을 더해가, 이윽고 전체를 볼 수 있었다. 리츠코의 열 손가락에서 뻗은 무척 얇은 에너지의 실이 허공을 종횡무진 달려 미키를 둘러싸듯이 쳐져 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기다리는 거미줄.
"내 고유능력은 말이지, 콕 찝어 이거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리츠코가 하기와라 상을 슬쩍 보았다. 의도를 알아챈 그녀가 끄덕였다.
"――능력의 세세한 조종만은 옛날부터 유난히 특기란 말이지."
녹색 빛이 사라지고 다시 에너지의 우리는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하기와라 상이 대량의 빛나는 삽탄을 미키를 노리고 쏘았다.
주위가 보이지 않는 실로 둘러싸여 있어서는 특기인 스피드로 피하지도 못하고, 미키는 하기와라 상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칠 수밖에 없다. 전부를 막지는 못하고, 미키의 뺨을, 허리를, 탄환이 스쳤다.
"윽."
하기와라 상의 공격을 처리하면서 미키가 얼굴을 찌푸렸다. 리츠코가 이번엔 마코토와 시선을 맞췄다.
"마코토, 다음이야. 준비해. 이 내가 전장에 있는 한――"
마코토가 가늘고 긴 검신을 어깨 뒤로,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마코토의 의사를 받아 검신이 흔들리는 불꽃에 휩싸였다.
"――프로듀스는 맡겨둬."
마코토가 뛰어나갔다. 하지만 나갈 수 없다면 들어올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근접공격에 의미는 없다. 미키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여유로워 보이는 웃음을 짓고 마코토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 미키의 머리 뒤에 녹색 원이 생겨난다. 왜 저기만 빛나고――그런가!
마코토가 급격히 가속해서 미키의 등 뒤로 돌아, 원 안으로 몸을 날렸다. 실이 없는 곳을 정확히 빠져나간 마코토는 놀라서 돌아보는 미키를 향해 기합과 함께 장검을 내리쳤다. 코앞에서 칼날은 낫 손잡이에 막혔지만, 충분히 힘을 넣은 마코토의 검은 불타오르는 화염을 미키에게 닿게 만들었다.
"뜨것!"
그대로 마코토는 뒤돌아본 미키의 반대편, 새로 빛나는 원 안으로 뛰어들어 우리에서 탈출했다.
"자, 종연이야."
실로 만들어진 우리 전체가 빛나기 시작해 직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빛을 발한다. 리츠코가 양손을 각각 꼭 쥐고 팔을 몸 앞에서 교차시켰다.
채찍처럼 구부러진 실이 모든 방향에서 미키를 덮쳤다.
"아앗!!!!"
미키가 다 막지 못하는 측면을, 등을, 녹색으로 빛나는 실이 태웠다. 미키의 비명이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리츠코가 손끝에서 에너지 실을 끊자, 그것은 미키를 옭아맨 채로 지면으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미키가 지면에 격돌했다.
"해, 해치웠다!"
자기 차례는 언제 오나 근질거려 하던 가나하 상은 조금 아쉽다는 듯이 외쳤다.
"잠깐만, 가나하 상. 그건――"
하면 안 되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모래먼지 속에서 금발 소녀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앵콜, 인 거야."
미키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키,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귀찮은 것도 싫으니까――"
미키가 리츠코를 노려보고 손에 든 낫을 빙글 돌렸다.
"한 곡으로 끝낼게!!"
미키가 뛰었다.
리츠코가 손끝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실을 다시 꺼내, 몇 겹이고 원을 그리며 자신과의 사이에 장벽을 만든다. 공방을 겸하는 소용돌이의 방패.
미키가 크게 낫을 옆으로 휘둘렀다. 저걸론 리츠코에게 닿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휘둘러진 낫은 연두색 칼날만을 킹 하는 소리를 연주하며 거대화시켜, 방패 째로 베어넘겼다.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는 리츠코의 옆구리를 낫 끝이 도려내고, 그대로 그녀를 아래쪽 지면으로 내동댕이쳤다.
"안 돼애애애애애애애!!!!"
하기와라 상의 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미키보다도 격하게 지면에 패대기쳐진 리츠코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옆구리에서 흐르는 혈액이 웅덩이처럼 퍼져 갔다.
"그럴, 수가……."
지금까지 것들 중 가장 큰 절망이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키는 쳐 떨어뜨린 리츠코 쪽을 보지 않고 우리들을 노려보며, 낫을 고쳐 잡았다.
"있잖아, 이번에야 말로 종연이야. ――박수는?"
누구도 몸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런 우리들에게 실망한 듯이 미키가 한숨을 쉬었다.
"매너 나쁜 관객에겐 벌을 주는 거야."
미키가 위쪽으로 든 낫의 칼날이 더욱 커져 간다. 안 돼, 저런 건 막을 수 없어. 그녀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한 벽을 만들어 내려고 올렸던 오른손이 굳었다.
머나먼 거리에서 미키가 낫을 휘두르자, 거대한 날 부분만이 손잡이를 벗어나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돌진해 온다.
"그런 게 어딨어――――――!"
"얘들아! 방어에만 집중해!!"
가나하 상과 내 절규가 겹쳐졌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두 장의 벽을 출현시킨다.
연두색으로 빛나는 날은 회전할 때마다 더욱 크기를 키워 갔다. 전원이 격돌에 대비하고――
먼지라도 터는 것처럼 날려가 버렸다.
몸 앞이 강렬한 아픔으로 떨리고, 바로 등 뒤에도 격렬한 충격이. 자신이 지면에 뒹굴고 있다는 게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다. 바로 전까지 하늘에 있었는데.
온몸을 덮치는 격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움직이지 않는 팔로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어찌저찌 무릎을 꿇었다. 방어가 특기인 내가 이 대미지를 입었다. 다른 애들은――
주위를 보자, 마코토가, 가나하 상이, 하기와라 상이, 나와 마찬가지로 지면에 뒹굴고 있었다. 모두 어떻게든 윗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설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아, 아직 안 죽었네인 거야. 깜짝이야."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웃음을 띄운 미키가 금발을 흩날리며 떠 있었다. 그 몸에 리츠코가 줬던 상처가 거의 다 아물어 있는 걸 보고, 힘의 차이에 경악한다.
……그렇더라도.
지면에 팔을 짚고 천천히 일어선다. 이제 와선 공포로 다리가 움츠러들던 때가 그립다. 지금은 그저, 엉망이 된 양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더라도.
"다들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해!"
미키가 두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등 뒤에 세 개의 거대한 연두색 삼각형이 생겨나,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한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공격보다도 강한 힘의 파동을 느낀다. 저걸 맞으면 아무리 잘 봐 줘도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먹을 쥐고 미키를 똑바로 쳐다본다.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다.
떠나간 사람이 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나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난 어차피 작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왔는가.
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황량한 대지, 무너진 학원. 아무도 없어진 그 광경이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뒤에는 지금,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걸로 충분하잖아?
세 개의 삼각형이 더욱 강하게 빛난 순간, 절망적인 위력의 광선이 일제히 방출되었다.
있는 힘껏 두 팔을 앞으로 내민다.
절대로 통과시키지 않겠어――!
강한 결의가 두 장의 거대한 벽을 구현시켰다. 그 표면이 밤하늘을 찢어 놓으며 다가온 빛의 격류와 격돌했다.
충격에 대지가 파이고 흙먼지가 날렸다.
두 팔이 격통에 저릿거린다. 방패가 삐걱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래, 도――!
"윽, 큿!!!!"
이를 악문다. 팔에 걸린 부하가 가벼워지고 시야가 트였다.
"치하야!"
모두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사한 것 같다. 일단은 막아 냈다. 고통에 팔을 누르면서 시선을 올린다.
상공에는 초연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미키가. 그만한 걸 쏘고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다.
"저게……아이돌의 힘이란 말이야?"
"그런 거야. 그나저나 그 벽, 과연 깜짝 놀랐어. 얇은 주제에 딱딱하구나."
"얇으니까, 단단한 거야……."
허세를 부리며 중얼거린 말이 미키에게 닿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온 몸의 아픔이 한계를 넘어, 난 바닥을 보고 지면에 쓰러졌다.
"아, 참고로 이거 연사할 수 있는 거야."
이걸로 끝이다. 포기가 스멀 스멀 온 몸을 감싸 온다. 이제 나로선 저걸 막아낼 수 없다.
"다, 들……도망……"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짠다. 입술에 묻은 모래가 기분 나쁘다.
이게 절망의 맛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먹는 건 이런 쓴 모래 같은 게 아니라――
너무 달지도 않고.
너무 쓰지도 않고.
벚나무 아래에서 만난, 소중한 소녀를 떠올린다.
미안해.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말을 꺼냈는데.
난 결국 누구 하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치하야 짱."
상냥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치 봄의 부드러운 산들바람 같아서.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지만……결국, 쓸데없게 됐――"
마지으로 말을 나누는 상대가 환청이라니. 별 의미 없었던 인생엔 딱 알맞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건 없어."
연두색 섬광이 얇게 열린 시야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보다 강하게 빛나는 진홍색 빛이 폭발했다.
"어……!?"
놀란 듯한 마코토의 목소리. 아아,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어.
――나도 살아 있어?
살짝 내 몸이 누군가에게 안겨 들어올려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연다.
머리에 장식된 두 개의 리본. 그리고 언덕에서 넘어졌을 때 붙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진홍색 꽃.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는 그 소녀는.
"하루, 카……?"
"아아, 다행이다. 이걸로 치하야 짱, 내일은 점심 먹을 수 있겠네."
만약 이게 꿈속이 아니라면.
내 시선 끝에서, 하루카가 웃고 있다.
"잠깐 치하야 짱 좀 맡길게. 이 이상 상처 입히면 나 화낼 거니까."
"어? 응……?"
가나하 상이 머뭇거리며 팔을 뻗었다. 그녀에게 상반신을 맡기면서, 미키를 향해 걸어가는 하루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미키와 꼭 닮은 옷을 몸에 둘렀지만, 그 색은 순백.
하루카가 한 번 뒤돌아보았다.
"치하야 짱은 내가 지킬게."
웃음이, 피었다.
곧바로 하루카는 다시 미키 쪽을 보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하루카가 오른손을 옆으로 뻗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얇고 긴 무기가 출현했다. 그 양 끝에는 불꽃처럼 흔들리는 진홍색 칼날. 하루카의 발이 대지를 강하게 차 날렸다.
공중에 날아오른 하루카는 똑바로 미키를 향해 갔다. 미키가 본 적도 없는 속도로 하루카에게 다가와 낫을 크게 휘둘렀다. 안 돼, 역시 너무 빨라――!
하지만 하루카는 미키의 스피드에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반복했다. 무기를 맞부딪히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이 자리에서 멀어지려는 듯이 교사 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유성 같은 궤적을 그리며 교차하고 점점 멀어져 간다. 더이상 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가 없다.
"하루, 카. 어째서……."
"치하야, 아는 사이야?"
가나하 상의 물음에 작게 끄덕인다.
아는 사이, 그렇지.
내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소중한.
――하루카가 있는 곳에 가고 싶어.
하지만 한동안은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나먼 저편에서 두 사람이 격돌한다.
진홍색 빛이 희망의 빛처럼 반짝였다.
이 소설은 픽시브에서 타마키 하야테(珠樹 颯)님이 연재하신 소설입니다. 허가를 받고 카와즈(かわづ)가 번역하였습니다. 원작자의 허가로, 이 소설은 작가와 번역가의 이름, 출처를 명기하면 전재가 가능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 코멘트된 감상은 원작자에게도 전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설의 원본 주소 :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4611857